[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30>강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5일 03시 00분


강가
―이용악(1914∼1971)

아들이 나오는 올 겨울엔 걸어서라도
청진으로 가리란다
높은 벽돌담 밑에 섰다가
세 해나 못 본 아들을 찾아오리란다

그 늙은인
암소 따라 조밭 저쪽에 사라지고
어느 길손이 밥 지은 자췬지
그슬린 돌 두어 개 시름겹다


시집 ‘오랑캐꽃’에는 이용악이 1939년부터 1942년까지 쓴 시들이 수록돼 있다. ‘강가’는 그중 하나다. 1939년이면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해이고, 독일의 동맹국이었던 일본이 미국 하와이의 진주만을 기습 공격해 전쟁이 태평양으로 확대된 때가 1941년 말. 그러니까 전쟁은 나라 밖에서 벌어졌지만 식민지에 대한 수탈이 극도로 치닫기 시작한 시기에 쓰인 시다.

노인은 암소한테 물을 먹이러 강가로 몰고 나왔을 테다. 그 김에 등짝이랑 뱃구레랑 엉덩이에 말라붙은 오물도 씻어주고 있었을 테다. 누가 먼저 말을 걸었는지, 어느새 노인은 초면의 화자에게 속에 담긴 말을 털어놓는다. (노인의 떳떳한 발설로 짐작건대) 독립운동을 하다가 잡혀 갔을 아들, 청진까지 갔다 올 차비를 마련하기 힘겨운 가난. 갈 때는 혼자 겨울 삭풍을 헤치고 걷겠지만, 아들과 함께 돌아올 때의 차비는 꽁꽁 여퉈 놓으셨으리라.

조밭은 어쩐지 논이나 밀밭보다 풍요롭지 않게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암소도 비쩍 말랐을 것 같다. 시 전편에 쓸쓸한 가난과 시름겨운 유랑의 기운이 자욱하다. 어느 길손인가 이 적빈한 마을의 강가에서 돌 두어 개 모아 불 지피고 밥을 지어 먹고 지나갔구나. 노인도 청진 가는 길에 어느 길섶에서 밥을 지어 드시게 될 테다. 화자도 정처 없이 떠도는 중이었을 테다. 그런데 시 속의 ‘그 늙은이’는 어머니일까, 아버지일까? 어머니일 것 같다. 이 늙은이의 결기는 간절한 모성이다.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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