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심규선]41번째 주일 미국대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6일 03시 00분


1964년 3월 일본 주재 미국대사가 정신병을 앓고 있는 한 일본인의 칼에 넓적다리를 찔려 중상을 입고 수혈을 했다. 대사는 말했다. “이제 내 몸에도 일본인의 피가 흐르게 됐다.” 그는 퇴임까지 고려했으나 “내가 지금 그만두면 일본인이 이번 사건에 책임감을 느끼게 될 것”이라며 이후 2년 5개월을 합쳐 5년 5개월을 근무하고 떠났다. 대사의 이름은 에드윈 라이샤워. 일본이 매혈을 금지하고 헌혈정책으로 전환한 것도 ‘라이샤워 사건’이 계기가 됐다. 그가 수혈로 간염에 걸렸기 때문이다.

▷라이샤워 대사는 미국인 선교사의 차남으로 도쿄에서 태어나 하버드대에서 일본사를 전공하고 모교에서 일본을 강의한 최고의 일본통이었다. 그래서 일본을 가장 사랑했고, 일본으로부터 가장 존경받았던 대사로 기억되고 있다. 라이샤워는 옌칭연구소 연구원이던 1939년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인 매쿤-라이샤워 표기법을 제안해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주일 미국대사는 1859년 타운센드 해리스부터 지금의 존 루스까지 40명. 초기 12명은 변리공사, 특명전권공사였으나 1906년부터 지금의 특명전권대사로 승격됐다. 일본이 대미 선전포고를 한 1941년 12월부터 대사관은 폐쇄돼 1952년 4월에야 다시 문을 열었다. 미국은 최근 거물급을 일본 대사로 보내는 경향이 있다. 미일동맹의 중요성 때문이지만 일본 문화를 동경하는 유명인들이 주일 대사를 원하는 경우도 많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조카 더글러스 맥아더 2세, 월터 먼데일 부통령, 톰 폴리 하원의장, 마이클 맨스필드(11년 8개월 재직) 및 하워드 베이커 상원 원내대표, 백만장자 사업가 로버트 잉거솔 등이 주일 대사를 지냈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큰딸인 캐럴라인 케네디(55)가 주일 미국대사로 내정됐다고 해서 화제다. 1986년 일본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것 외에는 별다른 인연이 없다는데도 일본은 ‘슈퍼스타급’이라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외교 문외한에게 논공행상으로 너무 중요한 자리를 줬다는 비난도 들린다. 하지만 아버지의 후광에다 최초의 여성 주일 대사라는 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절반의 성공은 거둔 것 같다.

심규선 논설위원실장 ksshim@donga.com
#주일 미국대사#라이샤워 사건#캐럴라인 케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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