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반팔이 뭐냐?” 필자는 초년병 시절 선배에게 지적을 받았다. 이른바 와이셔츠(드레스셔츠)는 반드시 긴팔을 입어야 하며 너무 더울 때만 소매를 한두 번 접으라는 게 선배의 지적이었다. 선배의 말은 곧 법이었기에 옷장에서 반팔을 싹 치워버리고 긴팔 셔츠를 몇 벌 새로 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요즘 바로 그 선배가 반팔 셔츠를 즐겨 입고 있다. 생각이 바뀐 것인지, 전력난 해소 캠페인에 동참하려고 한시적으로 ‘쿨 비즈’ 복장을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그래서 “선배! 왜 반팔 와이셔츠 입으세요”라고 따져보고 싶지만 꾹 참고 있다. 선배는 하늘이기에.
올 들어 드레스 코드(dress code)가 계속 화제다. 홍명보호 1기 축구 국가대표팀의 파주훈련장 정장 입소를 비롯해 흰색을 고집하는 윔블던 테니스에 출전한 로저 페데러(스위스)의 ‘주황색 반란’, 혹서기 법정 내 변호사 및 검사의 노타이 허용 논란, 삼성그룹 사장단의 사상 첫 반팔 와이셔츠 출근 등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드레스 코드는 특정한 모임이나 장소에 요구되는 복장 규정이다. 스포츠에선 골프장이 유난히 엄격하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전통과 권위를 내세우는 골프장에선 클럽하우스 입장 시 재킷 착용이 의무사항이다. 심지어 골프양말 색깔까지 흰색으로 지정한 곳도 있다. 대부분의 골프장에선 남성의 경우 깃이 없는 라운드 티셔츠는 입을 수 없다. 골프광으로 유명한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미국)은 지난해 한 회원제 골프장에서 주머니가 주렁주렁 달린 카고형 반바지를 입고 골프를 치다가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은 꾸준히 변해가고 있다. 한 사람이 결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방열 대한농구협회장이다. 1978년 실업농구팀 현대의 사령탑이었던 그는 정장 차림으로 공식 경기에 나선 첫 감독이다. 지금은 농구 감독이 정장 차림을 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예전에는 오히려 복장 위반이었다. 당시 방 감독은 라이벌 삼성과의 경기 때 분위기 전환을 위해 선수단 유니폼 대신 양복을 입었다. 이 때문에 테크니컬 파울을 선언당해 2점을 먼저 내주고 경기를 시작했지만 승리를 거뒀다.
복장 규정이 엄격하기로 소문난 국내 한 골프장 홈페이지의 ‘클럽 운영 안내’ 항목에 명시돼 있는 드레스 코드는 다음과 같다. ‘철저한 회원제로 운영되며 모든 내장객은 재킷 차림 입장만이 가능합니다. 초청받은 동반자가 간혹 점퍼 차림으로 오시는 경우가 있사오니 회원님들께서는 미리 공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여전히 철저하게 준수되고 있는지 궁금해 며칠 전 전화를 걸어봤다. “원칙은 재킷을 입으셔야 하는데 그냥 들고 들어오시기만 해도 됩니다.” 이 골프장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조만간 ‘단정한 옷차림’으로 더 완화되지 않을까.
형식이 중요할까, 내실이 중요할까. 이에 대한 판단은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다. 둘 다 나름의 이유와 타당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팀 기강을 바로잡기 위한 홍명보 감독의 ‘정장 드레스 코드’는 일단 효험이 있는 것 같다. 선수들은 이구동성으로 “마음자세가 진지해졌다. 태극마크의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다. 골프장마다 코스 로컬룰이 제각각이다. 기본적으로 룰은 지켜야 한다. 그래야 혼돈을 막을 수 있다. 로마법을 준수하기 싫다면 다른 곳으로 가고, 드레스 코드가 성가시면 다른 골프장을 이용하면 된다. 실제로 앤드리 애거시(미국)는 윔블던의 보수적인 드레스 코드에 반기를 들고 1988년부터 3년간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다. 방열 감독처럼 ‘선구자’가 되든 애거시처럼 ‘국외자’가 되든 결국 인생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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