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에서 연천 방향으로 국도 37호선을 가다 보면 경기 파주시 적성면 답곡리 나지막한 언덕에 일명 ‘중국군 묘지’가 조성돼 있다. 6·25전쟁 때 전사한 북한군과 중국군 유해를 안장해 둔 곳이다. 적군의 유해를 한 곳에 묻고 관리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없다. 현재는 북한군 유해를 안장한 1묘역과 북한군과 중국군이 혼재된 2묘역으로 구분돼 있으며, 이곳에 안장된 중국군 유해만 362구에 이른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중국 방문을 통해 묘역에 있는 중국군 유해를 유족들에게 송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중 모두 유교 문화권으로 가족과 조상을 중시하는 것을 볼 때 송환하지 않는 것은 유족이나 후손에게 안타까운 일이라는 게 정부의 송환 이유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외국에서 숨진 군인들은 현지에 묻는 관습이 있다. 6·25전쟁 당시 전사한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의 아들 마오안잉(毛岸英)의 묘가 아직까지 북한 땅에 남아 있는 것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당시 마오 주석은 아들 사망 후, 아들의 친구이자 소련에서 주중국 대사로 파견 온 유진(尤金)을 만나 “공산당원은 어디에서 죽건 거기에 묻히는 것이다. 내 아들 마오안잉은 조선에서 죽었다. 어떤 사람은 시신을 옮겨 오자고 했지만 거기서 죽었으면 거기에 묻으라고 했다”고 하기도 했다. 나중에 마오안잉의 아내인 류쓰치(劉思齊) 등이 남편의 시신을 가져오자고 요청했을 때도 마오쩌둥은 동한의 유명한 장군인 마원의 말을 인용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靑山處處埋忠骨(청산처처매충골·푸른 산 곳곳에 충성을 다한 병사들이 묻혀 있네), 何須馬革과屍還(하수마혁과시환·굳이 말에 시신을 싸서 돌아갈 필요가 있겠는가)”라며 일축했다.
중국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전사자 발굴과 송환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것도 마오쩌둥의 철학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제안에 중국 고위 관계자는 “한국 정부의 배려와 대통령의 우의적 감정이 그대로 전달됐다”며 기뻐했다지만, 이러한 사정 때문에 당혹감이 컸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측의 지나친 호의가 자칫 상대방에게는 결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대신, 묘역 주변을 재정비하고 중국인들이 제를 올릴 수 있도록 시설을 확충하는 것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지난해 8월 정부에선 5억 원을 들여 나무 묘비를 대리석으로 바꾸고 화장실과 진입로도 새로 만들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제를 올릴 장소는 물론이고 잠깐 앉아서 쉴 벤치 하나 없는 형편이다.
지난해에만 총 117만3000여 명의 중국인이 파주를 방문했다. 유해를 송환하는 대신 현재 묘역을 잘 정비해 놓는다면 중국 정부도 난처하지 않고 이곳을 방문하는 중국인들에게도 전쟁의 참상을 제대로 알려주는 기회가 될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의도일지라도 상대방의 의중을 모르고 하는 행동은 마이너스 효과를 내기 십상이다. 유해 송환만 서두를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호의를 중국인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부터 깊이 고민해 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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