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원본 공개하라던 문재인 의원의 민망한 말 바꾸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4일 03시 00분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실종 파문과 관련해 어제 “국가기록원에서 정상회담 회의록을 찾지 못한 상황은 국민들께 민망한 일”이라며 “이제 NLL(북방한계선) 논란은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의 중요 재산인 사초(史草)가 감쪽같이 사라진 상황에서 나온 그의 발언은 회의록 실종만큼이나 민망하다. 당장 사초 파기의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의도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는 엿새 전 자신의 트위터에 “우리는 온갖 핍박을 당하고 기록을 손에 쥔 측에서 마구 악용해도 속수무책(으로) 우리의 기록을 확인조차 못하니 말이 되느냐”고 억울해했다. 새누리당과 국가기록원이 회의록을 숨기고 있다는 투였다. 하지만 여야가 기록물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인 끝에 내린 결론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청와대에서 회의록을 국가기록원에 넘기지 않았다는 쪽으로 모아졌다. 회의록 최종본을 작성한 조명균 전 대통령안보정책비서관은 올해 초 검찰에서 “노 전 대통령의 지시로 회의록을 삭제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문 의원은 엉뚱한 주장을 폈다. “새누리당은 국정원이 공개한 회의록이 진본이라는 입장이었으니 국가기록원에서 회의록을 찾지 못했다고 해서 사실 판단에 어려움이 있을 리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원본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나. 상황에 따라 180도 말을 바꾸면 그만인가.

그의 말대로라면 NLL 논란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국정원 회의록 어디에도 ‘NLL을 기준으로 남북 양측에 등거리·등면적으로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자’는 노 전 대통령 측의 주장은 없다. 국가적 망신을 자초하는 데 일조한 문 의원은 “부실한 국가기록관리 시스템과 법적 불비(不備)를 더 튼실하게 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도 했다. 훈계를 하기 전에 사과가 먼저다.

그는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자 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이었다. 서거한 노 전 대통령을 빼면 당시 상황을 가장 빨리, 가장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도 회의록 폐기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국가기록원의 원본 공개에 정치적 생명을 걸었다면 무능하다. 만약 알고도 그랬다면 국민을 기만한 것이다. 문 의원은 지난달 30일 새누리당에 원본 공개를 제안하며 “눈앞의 작은 이익을 넘어 상식적 판단을 하자”고 강조했다. 그 말을 본인에게 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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