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진보정의당에서 명칭을 바꾼 정의당의 천호선 대표는 어제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대기업 30개를 3000개로 나누겠다는 공약을 국민이 이해할 수 있겠느냐. 실현 가능하고 설득 가능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벌 쪼개기는 지난해 대선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내놓은 공약이다. 천 대표는 “진보정당 행사에서 ‘투쟁으로 인사한다’와 같은 표현을 잘 쓰는데, 시민이 거리낌 없이 참여하는 데 장애가 된다”면서 진보정당의 언어와 문화를 바꿔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일보 인터뷰에선 “1980년대 운동권식 언어와 문화에 갇힌 ‘스크럼 정당’에서 벗어나겠다”고 밝혔다.
천 대표의 발언은 진보정당의 폐쇄적인 운영에 대한 자기반성을 담고 있다. 진보정의당이란 당명에서 ‘진보’란 단어를 떼어낸 것도 진보가 본뜻과는 달리 대중에게 부정적으로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천 대표가 어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를 만나 “당명에서 진보를 뺀 것은 진보의 가치를 포기해서가 아니라 진보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극복하기 위해서”라고 말한 것도 ‘한국형 진보’의 실패를 잘 보여준다.
통진당이 보여온 종북(從北) 성향과 비민주적 행태는 진보의 이미지를 결정적으로 추락시켰다. 통진당은 올해 2월 여야가 북한의 핵실험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채택할 때 표결에 불참했다. 지난해 9월 북한인권 운동가인 김영환 씨 고문사건의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결의안에도 반대했다. 진보의 핵심 가치인 평화와 인권을 스스로 부정한 꼴이다. 통진당은 지난해 이석기 김재연 의원의 비례대표 부정선거 사건으로 결국 분당(分黨) 사태를 맞았다. 진보정의당은 이때 통진당과 갈라섰다.
천 대표는 “진보의 가치는 특별한 이념이 아니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정의”라고 말했다. 정의당이 성공하려면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린 의원을 ‘윤봉길 의사’로 미화하는 세력과 결별해야 한다. “사안에 따라 통진당과 연대할 수 있다”는 천 대표의 발언은 아직도 반성이 부족한 것처럼 들린다. 소속 의원이 5명에 불과한 정의당은 몸집을 키우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선거 때 되풀이된 ‘묻지 마 식’ 연대나 후보 단일화는 늘 실패로 끝났다. 정의당은 당명을 바꾼 초심을 지켜 나가야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