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미야의 東京小考]한여름 밤의 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5일 03시 00분


“자유-민주주의-인권, 내 간판은 가치관 외교” 박근혜 대통령 만난 아베 총리 힘주어 강조
“인권문제도 보편적 가치관… 여성의 존엄 훼손한 위안부 문제 해결부터” 朴대통령 재차 촉구

와카미야 요시부미 일본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 전 아사히신문 주필
와카미야 요시부미 일본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 전 아사히신문 주필
더위로 잠을 뒤척이던 어느 날 밤 나는 꿈을 꾸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어디선가 만나고 있다. 다른 사람은 없고, 누가 만나게 했는지도 모른다. 이윽고 나에게는 두 사람의 대화가 들려왔다.

▽박근혜=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 대승을 축하드립니다.

▽아베 신조=대단히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런 발언은 한국 보도진이 들으면 큰일 나죠.

▽박=여기는 아무도 없으니까 괜찮습니다. 게다가 지금 발언은 외교적 수사이니 오해 없으시길.

▽아베=알고 있어요. 사실은 아베가 이제 헌법 개정을 향해 돌진하지 않을까, 8월 15일에 야스쿠니(靖國) 신사에 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겠지요.

▽박=(웃으며) 잘 아시네요. 하지만 아베 총리도 모처럼 안정된 정권을 획득했으니 외교도 안정시키는 게 좋지 않으실지. 첫째로 경제 재건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나요.

▽아베=알고 있어요. 하지만 내 지지자들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열망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사실은 고민이 많습니다.

▽박=저쪽 손을 들자니 이쪽이 울고, 아베의 패러독스인가요. 나도 야당의 폭언 세례를 받는 등 힘들지만 버티고 있습니다. 국가 지도자다운 행동은 인내, 인내입니다.

▽아베=하지만 지난해 여름 이명박 대통령은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이름)에 가지 않았나요. 그것은 저에게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야스쿠니 참배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박=어머, 야스쿠니와 독도를 같이 취급하다니. 어쨌든 저는 독도에 가거나 하지 않을 테니 안심하세요.

▽아베=한일 국교 정상화 때 다케시마 문제를 보류한 아버님은 훌륭했습니다.

▽박=그런 식으로 아버지를 칭찬하면 내 인기는 떨어질 뿐입니다. 기쁘지 않아요.

▽아베=보도진이 없으니 괜찮아요. 그런데 얼마 전 대대적인 중국 방문은 멋있었습니다. 유창한 중국어까지 선보였을 때는 감탄했어요.

▽박=이런, 마음에도 없는 말을. 사실은 초조했죠?

▽아베=아뇨, 조금 염려했을 뿐. ‘일본에 비해 중국에는 대단히 관대하구나’ 하고요.

▽박=중국이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제대로 제재해 주었잖아요. 그런 은혜와 의리는 소중히 하는 게 동양의 미덕입니다.

▽아베=이제 중국은 최대 무역 상대이기도 하겠죠. 아버님 시대에는 뭐라 해도 일본의 힘이 중요했지만.

▽박=그거 빈정거리는 말입니까. 나 역시 사실은 일본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베=그렇다면 이제 일본 방문도 생각해 보면 어떻습니까.

▽박=아니요, 야당과 언론에 얻어맞을 뿐. 아베 총리의 역사 인식은 도무지 평가할 수 없고, 위안부 문제도 소극적이고.

▽아베=그래도 중국에 비하면 일한 간에는 공통의 가치관이 많지 않나요?

▽박=공통의 가치관이라는 게 뭔가요? 부인이 좋아하는 한류 드라마?

▽아베=농담이 아닙니다. 내 간판은 ‘가치관 외교’예요.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 여기에 법의 지배 같은 보편적 가치요.

▽박=흠….

▽아베=한국도 민주화로 그것을 쟁취했잖아요. 박 대통령도 아버님과의 차이가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았나요.

▽박=잠깐만, 지금 자유와 민주주의에 더해 ‘인권’이라고 했나요.

▽아베=그래요. 중국 등은 아직도 인권을 억압하고 있고, 북한은 논외죠. 그런 만큼 일한이 손을 잡지 않으면….

▽박=좋아요, 아베 총리, ‘가치관 외교’에 동참합시다.

▽아베=네, 정말인가요. 감사합니다.

▽박=인권이라면 여성의 존엄을 훼손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지금 인권 문제로 세계적으로 거론되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겠죠.

▽아베=….

▽박=아베 총리가 보편적인 가치관으로 인권을 소중히 한다면 먼저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죠. 그렇게 한다면 아베 총리는 국제 사회에 이름을 남기게 돼요. 자, 가치관 외교 함께합시다.

▽아베=음. 그렇게 되나….

▽박=하는 김에 공통의 가치관 속에 역사 인식도 포함시킵시다.

▽아베=아니, 역사관은 나라에 따라 다르니까.

▽박=아뇨, 국제 상식의 범위에서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다른 나라를 침범했다면 반성하고 사과한다든지요. 자, 보편적인 가치관 외교를 합시다.

▽아베=흠….

이 대목에서 잠을 깨는 바람에 남은 대화는 못 들었다.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와카미야 요시부미 일본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 전 아사히신문 주필
#박근혜#아베#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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