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몰이를 하고 있는 할리우드 영화 ‘레드: 더 레전드’. 손자나 돌볼 나이의 은퇴한 정보기관 요원들이 종횡무진하는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재미는 한국 배우 이병헌이다. 한국 정보기관 출신 킬러 역을 맡은 이병헌은 초반에 등장하는 알몸 신을 보여주기 위해 하루 15마리의 생선을 먹으며 몸을 만들었다고 한다. “어디부터 찢어줄까.” 두 장면에서 깜짝 등장하는 한국어 대사가 잔혹하게 느껴지기보다는 어깨를 으쓱하게 만든다. 가수 비와 배두나도 할리우드에서 한국 배우의 성가를 높였다. 예전 한국인의 피가 조금이라도 섞인 할리우드 스타에게 관심을 쏟았던 것과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할리우드 진출의 꽃은 배우보다는 역시 영화감독이다. 김지운 감독의 ‘라스트 스탠드’,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가 잇따라 개봉된 2013년은 우리 영화사에 의미 있는 해로 기억될 것이다. 봉 감독의 ‘설국열차’에는 해외 언론과 평단의 호평이 쏟아져 기대를 한껏 높이고 있다.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외국 감독으로는 대만 출신 리안 감독이 있다. ‘라이프 오브 파이’ ‘브로크백 마운틴’ 등 리 감독의 대표작에는 어딘가 동양적 감성이 느껴진다. ‘원티드’ ‘링컨: 뱀파이어 헌터’ 등 러시아 출신 티무르 베크맘베토프 감독의 영화에는 고정관념을 흔드는 위트가 있다. 한국 감독의 영화에서 세계인은 무엇을 발견할지 궁금해진다. 살짝 욕심을 더 내자면 ‘이국적’이 아닌 ‘세계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배우와 감독이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것이다.
▷한국 영화인의 할리우드 진출은 놀랍게 발전한 한국의 영화제작 능력과 한국 배우의 자질이 문화적 다양성과 새로운 피를 원하는 할리우드와 만나 가능했다. 세계 3대 영화제를 비롯한 굵직한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들이 큰 상을 수상한 것도 도움을 줬을 것이다. 한국 영화의 독특한 감수성과 뛰어난 연출력이 세계무대에서도 통할 것이라고 할리우드가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물량공세 속에서도 한국 영화를 꾸준히 소비해온 한국 관객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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