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민주당에 원하는 건 계파 청산 위한 독한 혁신”
김한길의 담대한 약속은 뒷심이 허약해 虛約이 됐고, 폐족 친노는 또다시 부활했다
오직 국민만 바라보고 ‘대한민국을 위한 여야협약’ 맺을 수 없는 건가, 그는
“나으리. 결단을 내리시옵소서. 소첩은 이 나라 제일의 여인네가 되고 싶사옵니다.”
15대 대통령선거를 앞둔 1997년. KBS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 이방원(조선 태종)의 처 민씨로 등장하는 최명길의 눈은 독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큰일을 주저하는 잠룡을 일으켜 세워 마침내 왕으로 만들어 내는 최명길을 당시 김대중 국민회의 대선후보는 제일 좋아하는 탤런트로 꼽았다.
1995년 결혼하고 1996년 국회의원이 된 그의 남편 김한길이 지난 3월 민주당 대표 경선 출사표를 냈을 때 나는 ‘내조의 여왕’ 최명길을 떠올렸다. 독설로 책잡힌 적 없던 김한길이 “독한 혁신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며 떨쳐 일어났다면 뭔가 독기를 품은 게 분명하다고 믿었다.
대표가 되기 전 그는 “국민이 민주당에 요구하는 것은 계파 패권주의 청산”임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친노 주류를 겨냥해 “대선 패배, 총선 패배를 하고도 책임질 게 없다, 미래만 얘기하자는 건 참 걱정되는 혁신”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특정 계파 배척을 뜻하는 것이어선 안 된다고 통합의 리더처럼 말해서 사람을 헷갈리게 하긴 했다.
그 결과, 지금 민주당은 도로 옛날 그 당같이 됐다. 5·4 전당대회에서 심판을 받고는 숨죽인 듯하던 그들이었다. 그런데 두 달도 안 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논란을 기화로 불사조처럼 살아났다. 그러곤 김한길의 당 운영 방침을 판판이 뒤집으며 다시 정국을 주무를 태세다.
2007년 대선 패배 뒤에도 친노는 “우리는 폐족(廢族)”이라며 자숙 모드를 보였다. 그러나 2009년 노 전 대통령 자살과 함께 거칠게 부활했다. 그즈음 민주당은 ‘진보’라는 말 빼고 성장과 일자리정책 중심의 ‘뉴 민주당 플랜’을 내놨지만 돌연 노무현 정신 계승 경쟁에 불이 붙으며 말짱 도루묵이 됐다. 결국 돌고 돌아 제자리고, 언제 또 친노당이 탄생할지 알 수 없다. 결과적으로 ‘NLL 사수’라는 국론 통일을 이룩해 낸 고인에게 감사할 일인데, 민주당 지지율은 새누리당의 반 토막이 되고 말았다.
어쩌면 김한길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주군께 충성을 바쳐야 했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당내에서 서로에게 돌 던지지 말자”고 했는지도 모른다.
2005년 8월 12일 열린우리당 의원이던 그는 “김대중 정부에서 국가정보원이 1800여 명의 휴대전화 불법 감청(도청)을 조직적으로 해 왔다”는 발표에 동교동계 의원들과 집단 반발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중에 신건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유죄 판결까지 받았는데도 김한길은 “당시 청와대 주무 수석으로 국정원과 정보통신부까지 확인했다”며 1999년 9월까지는 도청 없었다고 우겼으니 지금의 문재인처럼 잘 몰랐는지, 속았는지, 아니면 바지저고리였는지 궁금하다.
김한길이야 과거사 때문에, 또 너무 합리적이고 무난한 처신 때문에, 혹은 참모만 해 봤지 장수를 해 본 적이 없어 독한 리더십을 발휘 못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의 계파 청산공약을 믿고 찍은 당원은 물론, 기대를 건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아무리 세(勢)가 없다 해도 대표가 제소리도 못 내는 야당에 희망을 갖긴 어렵다.
이런 비극적 드라마를 막는 절묘한 길을 멕시코가 보여 준다. 여당 견제와 대통령 발목 잡기가 세계적 유행이지만 유독 이 나라의 우파와 좌파 두 야당은 작년부터 새 대통령과 ‘멕시코를 위한 협약’을 통해 교원노조개혁 통신개혁 등을 해내고 있다고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가 소개했다. 특히 2006년과 2012년 같은 대선후보가 대선 불복 투쟁을 벌였던 좌파 민주혁명당(PRD)에선 극단적 꼴통 이미지를 떨치고 온건 대안 야당으로 거듭날 수 있어 이득으로 친다는 거다.
마침 새누리당에서 여야 대표가 만나자고 제의했다. 민주당은 어제 “공식 제안이 있으면 심도 있게 논의하겠다”면서도 “정국을 꼬일 대로 꼬이게 만든 새누리당의 대표로서 한 말씀 유감이라도 표시해야 한다”고 토를 달았다. 우리 정부에 대고 대북 대화를 촉구할 때는 조건 없이 하라더니 참 야박하기도 하다.
꼭 20년 전 김한길은 동아일보에 “앞으로 세상과의 관계에서 내 어머니의 적당주의를 적당히 적용하면서 때때로 나에게 이득이 되는 일에는 내 아버지(고 김철 통일사회당 당수)의 옹고집을 적용해 가면서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칼럼 ‘처세술’을 썼다. “아니면 내 아버지의 자기 신념을 소중하게 여기는 자세와 내 어머니의 일상적인 작은 행복을 무시하지 말라는 조언을 잘 조화시켜 가면서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라는 반전도 잊지 않았다.
그의 신념이 패권정치가 아니라면, 더는 친노 눈치 보지 말고 국민만을 위해 여야 함께 ‘대한민국을 위한 협약’이라도 맺기 바란다. 그래야 민주당의 가치인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이뤄 낼 수 있고 다음번 집권도 가능해진다. 그게 진짜 독한 혁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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