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여름은 덥다. 기온이 높을 뿐 아니라 습기도 많아 무덥다. 8월이면 더위는 절정에 이른다. 요즘 한일 간 외교 갈등은 이런 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구는 것 같다. 8월 15일 일본 총리와 각료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이야기다.
기자는 야스쿠니 신사를 꽤 많이 찾았다. 4월 벚꽃 시즌이 되면 신사 입구는 포장마차 천국이 된다. 도쿄 제1의 벚꽃 명소 지도리가후치(千鳥ヶ淵)는 야스쿠니 신사 입구와 연결되는데 상춘객들이 신사에서 발길을 멈추고 허기를 해결한다.
13∼16일 ‘미타마 마쓰리’ 땐 연인들의 천국으로 바뀐다. 노란색 등(燈)이 야스쿠니 입구에서부터 배전(참배하는 곳)까지 이어져 있다. 저녁이 되면 등의 불빛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10, 20대 젊은 남녀들이 야스쿠니 신사에 가득 들어차 축제를 즐기는 이유다.
야스쿠니 신사의 민낯은 여느 신사와 별 차이 없이 고즈넉하다. 26일 오전 기자가 야스쿠니 신사를 찾았을 때 간헐적으로 참배하는 일본인 서너 명이 보였다. 노인들로 구성된 단체가 안내원의 설명을 들어 가며 야스쿠니 구석구석을 살펴보기도 했다.
이 같은 모습만 본다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말이 이해될 법도 하다. 아베 총리는 일본 월간지 주오고론(中央公論·7월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인과 중국인은 야스쿠니가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신사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 가 보면 군인이 한 명도 없다는 데 깜짝 놀란다. 야스쿠니에 온 (일본) 참배객들은 절대 군국주의의 회귀를 염원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벚꽃과 포장마차, 축제, 고즈넉한 분위기는 분명 군국주의와 거리가 있다. 하지만 너덧 번 야스쿠니 신사를 찾다 보면 ‘군국주의에 대한 향수’라는 신사의 새 얼굴을 발견할 수 있다. ‘과연 일본은 침략 전쟁을 반성하고 있기는 할까’ 의문이 들 정도다.
야스쿠니 신사 오른쪽 귀퉁이에선 ‘대동아전쟁 70년전(展)’이란 특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전시회장 입구에 설치된 브라운관에서 ‘서구 열강이 앞다퉈 아시아를 식민 지배할 때 일본이 나서 아시아를 해방시키려 했다’는 설명이 나왔다. 일본이 1941년 12월 미국을 공격하면서 일어난 태평양전쟁을 ‘아시아 해방’이란 시각으로 해석한 것이다.
신사 내 유물 전시관인 유슈칸(遊就館)은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치른 각종 전쟁 자료 약 10만 점을 전시했다. 1층 현관에 설치된 증기기관차는 관람객들이 사진 촬영하는 단골 장소. 과거 철도 건설 과정에서 태국인 중국인 등 6만 명, 전쟁포로 1만5000명이 희생됐다는 사실은 어디에도 없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를 설명하는 부분에선 ‘히데요시의 꿈은 해외로도 확대돼 명나라 정벌을 주장하며 조선에 출병했으나 이루지 못하고…’라고 적혀 있었다. ‘침략’이 ‘출병’으로 표현돼 있다.
태평양전쟁을 설명하며 ‘아시아 민족의 독립이 현실로 된 것은 대동아전쟁에서 일본군의 빛나는 승리 후였다. 일본이 패한 뒤 각국은 독립전쟁 등을 거쳐 민족국가가 되었다’고 돼 있었다. 일본군의 승리가 민족국가 수립을 앞당겼다는 해석을 인도네시아, 필리핀 국민도 이해할지 의문이다.
이런 자료들을 본 일본인들의 소감은 어떨까. 특별전시회에 놓여 있던 방명록을 펼쳐 봤다. 대부분 “목숨을 잃은 선조들에게 감사를 표한다”고 적었다. 선조들이 왜 목숨을 잃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외국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일본은 침략 전쟁을 반성해야 한다”고 적어 놓자 그 밑에는 “이런 사람은 야스쿠니 신사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비판하는 글을 달았다.
한일 간에는 독도, 위안부 등 다양한 문제가 있다. 일본이 과거의 잘못을 미화하는 한 양국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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