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영]단장의 미아리고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눈보라가 휘날리는/바람 찬 흥남부두에…”로 시작하는 ‘굳세어라 금순아’(1953년 발표)는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대표적인 대중가요다. 어릴 땐 경쾌한 가락에 눈물짓던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가사를 뜯어보면 사뭇 애절하다. 목을 놓아 불러 봐도 찾을 수 없는 가족을 뒤로한 채 1·4후퇴 때 ‘피눈물을 흘리면서’ 부산으로 내려온 사람들. 국제시장 바닥에서 장사를 하면서도 사무친 그리움만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 그래서 “영도다리 난간 위에/초승달만 외로이 떴다”며 울었다.

▷애끊는 아픔도 있다. ‘단장(斷腸)의 미아리고개’(1956년 발표)다. 미아리고개는 6·25전쟁 당시 서울 북쪽의 유일한 외곽도로였다. 인민군 탱크가 이 고개를 지나 서울로 침투했고 인민군이 패퇴할 때는 수많은 애국지사와 저명인사가 이 고개를 넘어 납북됐다. 임의 마지막 모습은 너무 처절하다. “화약 연기 앞을 가려 눈 못 뜨고 헤매일 때/당신은 철사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맨발로 절며절며 끌려가신 이 고개여.”

▷하지만 마냥 울고만 있을 순 없었다. 모진 세월 어떻게든 살아만 내면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금순아 굳세어다오/남북통일 그날이 오면/손을 잡고 웃어나 보자/얼싸안고 춤도 춰보자.”(‘굳세어라 금순아’) 아빠를 그리다가 잠이 든 어린 것을 보며 엄마도 다시 일어섰다. “십 년이 가도 백 년이 가도 살아만 돌아오소.”(‘단장의 미아리고개’) 애써 피눈물을 닦아 내고, 애끊는 가슴을 움켜쥐고 일어서서 이뤄 낸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슬픔과 한의 상징인 미아리고개가 평화와 희망의 상징으로 다시 태어난다. 최근 서울 성북구는 이 고개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전담반을 꾸리겠다고 밝혔다. 25일 저녁엔 치유와 평화를 주제로 한 해금 연주와 전쟁 희생자의 떠도는 영혼을 달래주기 위해 넋풀이 공연도 열었다. 하지만 평화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는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정전 60주년. 미아리고개의 화약 연기는 사라졌는지 모르지만 민족의 애를 끊게 만들었던 비극까지 모두 치유된 것은 아니다.

김재영 사회부 기자 redfoo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