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신흥 아파트촌이 들어선 지역이지만 내가 방문했던 당시는 철거 직전의 황폐한 동네였다.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은 낯선 이에게 금세 다가와 말을 붙이고, 손만 내밀면 달려와 품에 안길 정도로 곰살맞았다. 그 후배는 봉사를 하면서 아이들의 권리문제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다며 전문적인 공부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늦은 나이에 대학에 진학해 아동복지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어린이 권익보호 상담사가 되어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취약계층 어린이들을 돕고 있다.
얼마 전 국내 굴지의 한 대학교가 아동복지학과와 가족보건학과, 청소년학과 등을 폐지하는 학칙개정안을 통과시켰다고 발표했다. 학교 측은 경쟁력 있는 학과를 집중 육성하기 위한 구조조정이라고 설명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는 하지만 인문학의 몰락에 이어 대학이 ‘어린이’조차 시장 논리를 앞세워 희생시키려 하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최근 여러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아동학대 사건을 통해 교사 자질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어린이집 무상보육으로 돌봐야 할 아이들은 늘어났는데 인성과 전문성을 갖춘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가끔은 직업에 대한 기본적 인식도 없는 이들이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교사가 된다.
제도와 법이 아무리 훌륭해도 그것을 운영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복지’는 가장 뜨거운 논제였고, 복지예산도 엄청나게 확충한다고 한다. 하지만 제도와 예산에 관한 논의만 달아올랐을 뿐 현장에서 ‘복지’를 담당할 인력에 관한 논의는 뜨거웠던 적이 없다.
아동복지상담사가 된 후배는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 늦게나마 원하는 분야를 찾아 공부한 것이라고 말한다. 진로 문제로 우리 유니세프한국위원회로 연락해온 학생 중에는 아동복지학이나 유아교육을 전공하겠다는 꿈을 말하는 학생이 적지 않다. 무엇이 진정한 국가 경쟁력인가.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갈 소중한 아이들을 잘 키우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경쟁력 강화의 길이 아닐까. 우리 아이들의 권리를 지켜줄 인재들의 배움터에 재를 뿌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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