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37>탱자는, 탱자가 아닙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31일 03시 00분


탱자는, 탱자가 아닙니다
―장옥관(1955∼)

탱자는, 탱자가 아닙니다
탱자처럼 올라붙은 불알 가진 수캐가 아닙니다 꽃핀 암캐 항문이나 쫓는 수캐가 아닙니다
갓 피어난 채송화 꽃밭 휘저으며 나비를 쫓다가도
눈동자에 뭉게구름을 담아냈지요

비록 늘 굶주렸지만, 이웃의 후한 대접에는
밭고랑에 숨은 생쥐 잡아 현관에 갖다놓는 염치도 있었어요
장맛비에 허적이며 온 동네 쏘다니는 그를 만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요

앞산 능선이 완만한 것은 개의 등이 굽었기 때문이며 그의 등이 굽은 것은 사무침 때문입니다

탱자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이불 홑청 빨다가 구름에게 손등을 깨물린 날
마을 뒷산 오르는 이웃들 따라 올라가 영영 내려오지 않았어요
주머니에 든 돈과 입은 옷으로 대문 나서서
몇 년째 돌아오지 않는 제 주인처럼
사무침이 구름을 피우고 사무침이 방금 다렸던 와이셔츠를 다시 다리게 만듭니다

한번 흩어진 구름은 왜 다시 뭉쳐지지 않을까요 한번 지나간 물소리는 왜 다시 돌아오지 못할까요
푸른 가시마다 총총한 흰 꽃
탱자 울타리에 탱자가 올해에도 걸어와 매달리는데

탱자는 탱자나무 집 개였을까? 주인이 종적 묘연해진 뒤에 혼자 빈 집을 지키며 주린 배로 동네를 쏘다니다 가끔씩 이웃사람들한테 밥을 얻어먹던 탱자는 수놈이지만 이름처럼 곱상하게 생기고 순했을 테다. 그 작고 가여운 개 한 마리를 품어 주는, 그런 동네가 우리나라에 한 군데나 있을까? 강아지 적부터 친척처럼 따르던 동네사람들이 “요요요” 부르니, 탱자는 꼬리치며 즐겁게 따라갔을 테다. 사람들이 솥단지에 물을 붓고 불을 때고, 몇 사람은 막간을 이용해 풀밭에서 공놀이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탱자는 헤헤 웃으며 공을 쫓아다녔을 테다. 그런 탱자를 한 동네 사람들이 히히 웃으며 잘도 잡수셨을 테다.

그런 한편, 어떤 이들은 자기가 지켜주지 못한, 자기도 저버린 동물로 하여 평생 마음에 그늘이 진다.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잊히기는커녕 그날의 하늘빛, 사소한 기미들, 모든 것이 잔인할 정도로 생생하다. 이 시가 실린 시집 ‘그 겨울 나는 북벽에서 살았다’에는 화자의 탱자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이 사무치는 이 시가 보여주듯, 사람이건 동물이건 속수무책 약한 생명에 대한 비통함이, 때로는 생명의 안간힘에 대한 애틋한 옹호가 아로새겨져 있다.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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