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5일 오후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보기 드문 상황이 벌어졌다. 시위참가자들이 경찰관을 향해 체포하겠다고 외친뒤 팔을 꺾고 목덜미를 붙잡은채 20m 가량 끌고간 것이다.
체포된 사람은 남대문경찰서 경비과장이고, 그를 체포한 이들은 민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 4명과 노조원 1명 등 5명이었다. 변호사가 경찰을 체포하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일이 벌어진 것이다.
시민에게 정복을 입고 근무중인 경찰을 체포할 권한이 있을까? 민변 변호사들은 경비과장이 집회를 방해했기 때문에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편다.
형사소송법 212조와 214조에는 '(벌금 50만원 이상에 해당하는 죄를 저지른) 현행범인은 누구든지 영장없이 체포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또 집시법에 따르면 '폭행, 협박, 그 밖의 방법으로 평화적인 집회 또는 시위를 방해'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경찰관은 5년 이하)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즉 법조항만으로만 보면 '①민간인도 중한 범죄의 범인을 체포할 수 있는데 ②집회방해는 그런 범죄에 해당하므로 ③집회를 방해한 경찰을 체포할 수 있다'는 논리전개가 가능해진다.
물론 이런 논법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경비과장이 집회를 진짜 방해했는지를 먼저 규명해야한다. 민변은 당시 경찰이 폴리스라인을 허가받은 집회구역 경계선의 안쪽으로 걸쳐서 설치하는 등 집회를 방해했다고 주장한다.
경비과장이 현행범에 해당하는지도 논란거리다. 형사소송법상 현행범은 △범인으로 불리며 추적되고 있거나 △범죄 도구를 지니고 있거나 △신체나 옷에 현저한 증거가 있거나 △누군지 묻자 도망하려할 때 등의 4가지 요건 가운데 하나 이상에 해당해야한다.
필자는 민변의 주장이 모두 맞다고 가정하고, 법조계 인사들의 반응을 들어봤다.
한결같은 반응은 "안타깝다"는 것이었다. 경찰 체포의 합법 불법 여부를 떠나, "민변이 어쩌다 그렇게까지 됐는지…그렇게까지 하는게 민변에게 바람직한 것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많았다. 소총 싸움에서는 이길지 몰라도 전쟁에서는 지는 일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민변은 현대차 희망버스 사건 직후인 7월 22일 발표한 '현대차와 보수 언론은 희망버스 시민들과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을 즉각 중단하라'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폭력사태가 빚어진 경위를 이렇게 설명했다.
"참가자들은 불법파견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현대차 정몽구 회장을 면담하기를 요청했다. 그런데 면담 요청에 대한 답변으로, 현대차는 용역들과 직원들을 동원하여 희망버스 참가자들에게 소화기와 소화전을 마치 최루탄마냥 퍼부어대고, 곤봉과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당시 폭력사태의 시발점은 시위대가 철제 담장을 밧줄로 끌어내리며 공장 진입을 시도한 것이었다. 민변은 이를 '면담요청'이라는 점잖은 표현으로 뭉뚱그린 것이다.
앞서 4월 민변은 탈북자 간첩사건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이 가혹행위를 통해 사건을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이에대해 국정원 수사관 3명이 명예훼손이라며 민변 변호사 3명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내자 민변은 "국정원이 변호인들의 변호권을 짓누르고 협박한다"며 유엔에 진정을 냈다.
하지만 헌법이 보장한 변호권은 피고인이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를 뜻하는 것이지 변호사가 법정 밖에서 아무 주장이나 발설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상대방의 명예는 마구 공격하면서 자신들이 법적으로 반격당하면 "경제적 심리적 고통(distress)을 당했다"(민변 발표 영문 논평 문구)고 국제사회에 진정하는 모습에서 사람들은 어떤 이미지를 떠올릴까.
민변 같은 개혁적 성향의 법률가 단체는 우리사회에 반드시 필요하다. 제도와 법은 본질적으로 보수적이므로 그 틈새에서 숱한 모순과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변의 뿌리에는 좌우파를 가릴 것없이 깊은 존경을 받는 고 조영래 변호사가 있다. 조 변호사가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1970, 80년대야야말로 공권력의 폭력과 악법에 맞서기 위한 저항수단으로서의 정당한 폭력과 법위반 행위가 일정부분 불가피했던 시대였다. 그런 시절이었던 1971년 조 변호사는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으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다.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이종찬 씨는 동아일보에 이렇게 회상했다.
"어느 날 수사관들이 날 보고 '거물이 하나 들어왔다'고 하더군. 누구냐니까 조영래라는 거야. '그 사람이 왜 거물이냐' 하니까 '이놈은 때릴 필요가 없다' 이거야. 잡혀온 주제에 수사관들한테 조서를 그렇게 작성하지 말고 이렇게 작성하라고 지도를 한다는 거야. 다른 사람한테 죄를 뒤집어씌우지 않고 자기가 했다고 하면서 말이지. 수사관들이 감복을 한 거지. 인격적으로 조영래가 이겼다면서 말이야."
민변이 자신의 허물에는 관대한채, 상대방에 대해서는 온갖 논리를 이리저리 연결시켜 공격하는데 골몰한다면, 공허한 논리싸움에서는 이길지 몰라도 시민의 지지와 격려를 얻고 개혁의 토대를 두텁게 만드는 더 큰 전투에는 오히려 악영향만 끼칠 것이다. 자기가 내뱉은 고성(高聲)이 자신이 딛고 있는 발판을 갉아먹는다는걸 왜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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