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41대 대통령을 지낸 조지 H 부시, 즉 ‘아버지 부시’의 사진 한 장이 얼마 전 화제가 됐다. 백혈병에 걸려 머리카락이 모두 빠진 두 살짜리 꼬마 패트릭을 안고 환하게 웃는 부시도 머리카락이 한 올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내년이면 아흔이 되는 부시는 자신의 경호원들이 투병 중인 동료의 아들을 돕기 위해 단체로 삭발한 것을 보고 “옳은 일을 하는데 빠질 수 없다”며 동참했다고 한다. 바버라 부시 여사는 깜짝 놀랐지만 이내 “훨씬 젊어 보인다”며 남편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빌 클린턴 42대 대통령도 “41(부시를 지칭), 당신은 위대하다”고 칭송했다.
아버지 부시에 이어 43대 대통령을 지낸 조지 W 부시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장면의 주인공이다. 그는 2001년 9·11테러 바로 다음 날 폐허가 된 세계무역센터 터에 점퍼 차림으로 나타나 구조작업을 벌이는 소방대원들 사이에서 메가폰을 들고 외쳤다. “나는 지금 미국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듣고 있습니다. 오늘 이 빌딩을 처참하게 무너뜨린 테러리스트들도 반드시 여러분의 소리를 듣게 하겠습니다.” 이런 대통령의 모습에 미국인들은 열광했다.
그랬던 아들 부시는 4년 뒤인 2005년 곤욕을 치렀다.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부를 강타한 8월 29일, 고향 크로퍼드 목장에서 휴가를 보내던 그는 재난현장이 아닌 샌디에이고의 한 행사장으로 날아가 말쑥한 양복을 입고 선물 받은 기타를 연주했다. 대통령의 사진을 접한 국민들은 차갑게 등을 돌렸다. 헐벗은 아이를 안고 눈물을 훔치는 뉴올리언스의 이재민 옆에서 해맑은 표정으로 기타를 연주하는 부시를 합성한 패러디 사진까지 나돌았다.
‘함께하는 리더’라야 팔로어가 진심으로 따른다는 것은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마찬가지다. 국민도, 부하직원도 리더와 연결돼 있다고 느껴야 비로소 마음을 연다. 이를 모르는 리더는 없다. 누구나 ‘소통의 리더십’을 부르짖는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회식 자리에서 혼자만 떠드는 팀장, “그것도 아이디어야?”라고 질책하는 부장, 부하의 실언(失言)을 잊지 않는 임원, 높은 가죽의자에 기대 지시만 하는 최고경영자(CEO)는 너무나 흔하다.
다리가 사슬에 묶인 아기 코끼리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끊을 수 없다는 걸 학습한다. 이런 코끼리는 무럭무럭 자라 사슬을 너끈히 끊을 수 있는 힘이 생겨도 그럴 생각을 못 한다. 작은 물고기를 먹잇감으로 삼는 창꼬치도 피라미를 잡아먹기 위해 돌진하다 유리벽에 가로막혀 번번이 실패하면 점차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된다. 나중에는 유리벽을 제거해도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이라고 다르지 않다. 리더가 행동으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직원들은 눈치를 보다 아예 입을 다물게 되고 조직 전체가 무기력증에 빠진다. 리더는 리더대로 피곤해진다.
젊은 직장인들에게 ‘가장 소통을 잘할 것 같은 CEO’를 꼽으라고 하면 단연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첫째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추대된 뒤 다소 뜸하지만 그는 트위터를 통해 친근한 이미지를 구축했다. 트위터에 나타난 깨알 같은 그의 일상생활을 보면 이 이미지는 ‘조작’과도 거리가 먼 것 같다. 지난달 1일에는 이런 트윗을 날렸다. ‘건강검진 끝나자마자 냉면 흡입! 회사 식구들이 여기저기 몇 테이블이나 있어서 ○○면옥 계산 기록 세움 ㅋㅋㅋㅋ 냉면이 무려 48마넌(만 원) ㅋㅋㅋㅋ’
한상범 LG디스플레이 사장은 최근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리더십 특강에서 “보스는 뒤에 앉아 명령하지만 리더는 맨 앞에서 조직원을 이끈다”며 “직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인간적인 리더가 되자”고 강조했다.
안타깝게도 많은 이들은 ‘계급장’을 떼기 전까지는 자신이 보스인지, 리더인지 알지 못한다. 보스에 머물 것인가, 리더가 될 것인가 그것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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