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무소유 시대]<9·끝>일본 저성장 풍속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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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흔히 숫자로 표현된다. 한국 경제의 저성장 위기 또한 ‘잠재성장률 3%대로 급락’, ‘실질성장률 3년 연속 잠재성장률 하회 전망’ 등의 경고에서 위기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저성장에 대한 지표와 담론만 많을 뿐, 저성장 사회의 실체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다.

경제 침체는 사회의 구조만 변화시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람들의 문화와 의식도 바뀐다. 가까운 사례가 일본이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정부와 기업이 ‘경제 부흥’을 목표로 단결했다. 종신고용을 보장해주는 안정된 직장에서 사람들은 ‘회사=나’라는 생각을 갖고 일에 매진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일본 경제는 전자, 자동차, 조선, 제철 산업을 중심으로 놀랄 만한 성장을 이뤘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평균 실질성장률이 10%에 달할 정도였다.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쓴 베스트셀러 ‘1등 일본(Japan as Number One)’이 등장한 시기도 이때다.

그러나 영원할 것만 같았던 성장의 꿈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1990년대 초 자산 버블의 붕괴와 함께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때부터 이어진 저성장 시대를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부른다. 실질성장률은 매년 1∼2%를 넘지 못하고 있다.

20여 년 동안 일본 사회는 어떻게 변화되었을까? 극단적으로 ‘하류사회’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수출기업은 글로벌 마켓에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종신고용은 사라졌으며 그 자리를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채우고 있다. 게다가 급속한 고령화까지 진행 중이다.

더 큰 문제는 ‘희망의 격차’다. 2006년 니혼게이자이신문의 계층의식조사 결과를 보면, 자신을 중류층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1987년과 비교해 21%포인트 감소한 54%인 반면, 하류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17%포인트가 증가한 37%이다. 특히 태어날 때부터 길게 지속된 저성장 시대에 익숙해져 버린 젊은층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최근 한국의 젊은이들도 자기 자신을 ‘88만 원 세대’라고 부르고,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라고 주저 없이 말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저성장의 폐해는 우리 곁에 부쩍 다가와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저성장·무소유 시대에 희망은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사회에서 발견되는 공통적인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즉 기존의 양적인 성장에서 질적인 성장으로 바뀌는 변곡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개개인의 소비 측면에서 살펴보자. 미래의 소득 증가를 전제로 남의 눈을 의식하는 과시형, 모방형 소비가 고도성장기의 소비 형태였다면, 불필요한 곳에는 소비하지 않고 자신의 취미와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소비로 옮겨 가는 것이 성숙사회에서 보이는 모습이다. 합리적, 개성적인 소비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저성장·무소유 시대는 한국 경제에 새로운 도전임에 틀림없다. 그와 동시에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형 성숙사회로 한국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이자 희망이다.

최창희 노무라종합연구소 서울 대표   
정리=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일본#무소유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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