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39>바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5일 03시 00분


바람
―다카하시 아유무(1972∼)

나와 사야카 그리고 바테루텐(홈스테이 집의 아들)
세 사람이 양을 몰고 초원을 한없이 걸었다.
나는 하모니카로 밥 딜런의 ‘바람의 소리’를 불었다.

장난을 좋아하는 바테루텐이 내 손에서 하모니카를 뺏는다.
“하모니카 불 줄 알아?”라고 묻자, 그는 고개를 젓는다.
그는 내 하모니카를 바람에 맡겼다.
후∼ 후∼ 화∼ 화∼

바람이 하모니카를 불고 있다.

강하게 가늘게, 미세한 비브라토를 주면서
바람은 절묘한 톤으로 하모니카를 불었다.
인간이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소리…
열 개의 음이 동시에 울리는 소리…

1분 정도 바람의 연주를 들려준 뒤
바테루텐은 살짝 웃으며 나에게 하모니카를 돌려준다.
‘바람의 연주가 어때?’라는 듯.

맞아, 네가 이겼다!


‘후∼ 후∼ 화∼ 화∼’ 360도 지평선의 몽골 대초원이 하늘만큼 땅만큼 커다란 입으로 부는 하모니카 소리를 떠올려본다. ‘후∼ 후∼ 화∼ 화∼’ 양들도 귀를 쫑긋거렸으리. 하모니카 칸칸 바람에 스쳐 떨리는 가녀린 그 소리, 바람결에 전해져 누군가는 환청처럼 들었으리.

연주법이 간단해서 단순한 곡조라면 누구라도 제법 흥겹게 불 수 있는 하모니카는 작고 가벼워서 여행할 때 지니고 다니기에 적격이다. 다카하시 아유무가 아직 시를 쓸까? 그랬으면 좋겠다. 그는 스무 살에 대학교를 중퇴한 뒤 출판업, 인디밴드 리더 등을 하다가 스물여섯 살에 결혼해, 곧장 아내 사야카와 단둘이 세계일주를 떠났다. 위 시는 2년간의 그 여행 중에 썼다. 첫 세계일주에서 돌아온 뒤 오키나와에 이주해서 오키나와를 세계 제일의 파라다이스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주재했다는데, 2008년에 이번엔 네 식구가 무기한으로 세계일주를 떠났다는 게 그에 대해 내가 아는 마지막 정보다.

‘세계’라는 말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세계적인 시인, 세계적인 음악가, 세계적인 운동선수, 세계적인 기업 등등은 그 분야에서 자기 힘을 세계로 넓혔다는 것이겠다. ‘세계적인’ 사람들은 먹고살기 편하겠지. 좋겠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세계적인 명성’에 야망을 갖는 것일 테지. 다카하시의 세계일주는 다르다. 인생을 우주적으로 느끼고 세상 사랑하기라는 꿈을 여행을 통해 실현하는 그의 다감하고 다정한 발자취를 그려 본다. 오랜만에 리 오스카의 하모니카 독주 ‘비 오기 전’을 듣고 싶다. 하지만, 비는 당분간 그만 왔으면!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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