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와, 세상 벗님네야! 이내 말 좀 들어보소. 장마 끝 팔월이라 입추말복 절기로다. 이글이글 아스팔트 바닥 ‘앗 뜨거워라!’ 불에 덴 듯, 돌담 위 호박넌출 개 혓바닥 모양 늘어졌다. 모기 입 삐뚤빼뚤 처서는 언제 오나. 문득 곰곰 손꼽아 헤아리니, 아직 보름여나 남았구나. 오호라, 눈 감으면 얼음동동 수박화채 아른대고, 눈 뜨니 싸락싸락 얼음 깨무는 소리 자그럽다.
“쓰름쓰름 쓰으름∼” 쓰름매미 살갑고, “맴 맴 매앰∼” 참매미 조신하다. “트르륵 츨르륵∼” 트럼펫 불어대는 말매미, “따르륵 따르르∼” 기관총 쏘아대는 참깽깽매미, “지글지글 딱 따그르르∼” 기름 볶아대는 유지매미, 온종일 악머구리 끓듯 머리에 쥐가 나는구려. 새 각시 방귀뀌듯 조심조심 ‘반짇고리 골무(박용래시인)’만 한 토종매미들아, 저 소나무등껍질처럼 우악스러운 외래 매미 등쌀을 어찌 견디며 살아갈꼬!
길섶 샐쭉 푸른 달개비꽃, 서쪽하늘 눈썹달을 누가 캐다가 심었을까. 담벼락 아래 울긋불긋 앉은뱅이 채송화꽃, 누가 색동 납작단추 주르르 달았을까. 시골 외딴집 마당 가득 봉숭아꽃, 분꽃, 맨드라미꽃, 과꽃, 옥잠화, 달리아꽃, 나리꽃…. 누구 보라고 저렇게 흥겨운 재롱마당 펼쳤을까.
꽃밭 가장자리 껑충 큰 해바라기꽃 바람에 건들건들, 새우 수염 족두리꽃 푸하하! 너털웃음, 하늘하늘 코스모스 허리 비틀며 싱글싱글, 그 어깨 너머 부얼부얼 뭉게구름. 푸르고, 붉고, 하얀 쟁반 수국꽃들 “데엥∼ 뎅!” 서로 부딪쳐 징소리 자아내고, 장독대 아래 노란 민들레꽃 “까르르∼ 까르르” 숨넘어간다.
꾸덕꾸덕 누습장마에 염천고열 겪었으니, 어디 사람 입안인들 자릿내가 안 날쏘냐. 하물며 참으로 간사한 게 사람 입맛 아니런가. 그 안달복달을 어찌 눈꼴시어 봐주리오. 슬프도다! 사람 한생! 겨우 밥 한 보시기를 못 이겨서 애면글면 주접이라. 지난 새봄에는 푸성귀에 보리밥 한술이면 꿀맛이더니, 이제는 입안 헛헛하여 건입맛만 쩝쩝 다시는구려. 혀끝 맛봉오리가 문을 꼬옥 닫았으니, 혓바닥 깔깔하고, 입안 이리 밍밍 저리 뻑뻑, 메마른 입천장에 단침 한 방울 돌지 않네.
행여 입맛 돌까 찬물에 밥 말아 먹는구나. 밥알을 이리 살짝, 저리 슬슬 굴렸다가, 위아래 잇몸 사이에 은근슬쩍 지그시 눌러본다. 오호 통재라! 아무리 애써본들 입안은 텁텁하고, 가도 가도 황톳길 적막강산일 뿐이로세.
어화, 벗님네들! 한 점 먹세 그려, 또 한 점 먹세 그려. 온 세상이 혁명을 하든 말든, 우리는 오늘 민어살점 자꾸자꾸 먹세 그려. 쫄깃쫄깃 마닐마닐한 찹쌀인절미 맛이 또한 이럴런가. 십년 묵은 입안 군내 눈 깜짝할 새 가셨구려. 민어 수컷 뱃구레 한 점을, 묵은지에 훌훌 싸서 넙적한 어금니에 물큰물큰,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얼쑤 한번 얹어나 보세. 구수하고 담백한 뒷맛이 셋이 먹다가 하나 꼴까닥해도 당최 모르겠구려.
고추장 풀고 단물 쩍쩍 오른 애호박, 아삭아삭 상큼한 미나리에 쑥갓, 팽이버섯 넣어 진득진득 끓여낸 민어탕은 또 어떠한가. 그 깊고 시원한 맛이 배 속을 박하처럼 싸아! 뚫는구나. 쫀득쫀득 고소한 민어부레는 아득하고 황홀하여, 이마에 땀이 돋고, 어찔어찔 살짝 어지럽기까지 하는 도다.
민어부레 속에 오이, 두부, 쇠고기 따위의 소를 박아 찜을 한 어교순대나 기름소금장에 찍어먹는 솔보굿 껍데기도 안 먹으면 두고두고 서운하리. 어화둥둥! 고추 먹고 맴맴! 얼씨구나, 지화자! 생각만 해도 스르르 침이 괴고, 엉덩이 달싹달싹, 온몸 후끈후끈, 마음 우왕좌왕 거처 없이 달뜨는구나.
어와, 세상 벗님네들, 이내 한말 들어보소. 어제는 이 산 저 산 꽃 천지 봄이더니, 오늘은 온통 푸릇푸릇 여름세상이로구나. 이 여름도 기껏 한 철이러니, 이미 아침저녁 건들바람, 가을이 문 밖에 서성이고 있네 그려. 오호라, 세상만물 모두가 ‘글자 없는 서책’이로다.
무정세월 강물처럼 무심코 흘러가고, 아차 한번 늙어지면, 다시 청춘 못 오나니. 돈, 부귀, 명예, 학식, 그 까짓게 다 뭐란 말인가. 나무는 가만히 있고자 하나, 바람은 한사코 봉황이나 용이 되라 등 떠미는구나. 아서라, 참새나 까막까치처럼 수다 떨며, 재미있게 살다 가면 그만이지.
오호라, 강호세상 벗님네야, 서로 옳다 그르다 다툴 것 무엇인가. 사람 한생 그 누구도 갈 때 보면 어디 ‘밸 것’ 있기나 하던가. 하고 싶은 것 하고, 맛난 것 먹으며, 슬금슬금 놀다가소. 공중의 새가 어디 발자국을 남길쏘냐. 한세상 찧고 까불며, 있는 듯 없는 듯 살다 가시구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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