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부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한 남자의 죽음을 놓고 치열한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한쪽에선 이 남자를 추모해선 안 된다고 강하게 비판했고, 한 유명 배우는 그를 추모하는 트윗을 썼다가 거센 힐난에 곤욕을 치렀다. 반면 다른 쪽에선 그의 죽음을 추모하자며 전국 20여 곳에 자발적으로 분향소를 차리고 조문을 촉구했다.
SNS를 양분시킨 죽음의 당사자는 고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46)다.
그는 지난달 25일 “한강에 투신하겠다. 1억 원을 빌려 달라”는 트윗을 쓰고 실제로 다음 날 서울 마포대교에서 몸을 던졌다. 투신 장면은 SNS로 생중계됐다. 그는 “한강 투신은 퍼포먼스일 뿐이다. 전투 수영으로 살아 돌아오겠다”고 했지만 사흘 만에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왔다. 목숨을 담보로 한 모금 퍼포먼스를 펼치다 사망한 그를 두고 SNS에서는 ‘돈키호테’라는 냉소와 ‘열사’라는 추모가 엇갈렸다.
성 대표는 ‘남성 인권운동’이 생소한 대중의 관심을 끄는 수단으로 SNS를 택했다. 그는 사망 직전까지 2만2417개의 트윗을 썼을 만큼 ‘SNS에 살고 SNS에 죽는’ 남자였다.
그는 트위터에 “박근혜 안철수 문재인 셋 중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당신 인생이 파탄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만난 된장녀가 당신 삶을 파멸시킬 수 있는 확률은 거의 100%다” “출산율 세계 꼴찌인 나라에서 무슨 생리휴가인가. 닥치자. 모성이 배제된 생리는 장애다” 등의 자극적인 발언으로 여성을 비판했다. 성 대표의 트윗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강해졌다. 열혈 지지자들은 성 대표의 강한 화법에 열광했지만 남성운동의 취지에 동감하면서도 그의 거친 언사에 등을 돌리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하지만 성 대표를 직접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를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생전에 지인에게 “평범한 말을 하면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더라. 관심을 끌려면 말의 수위를 높일 수밖에 없다. 내 역할은 광대”라고 털어놓곤 했다고 한다. 그만큼 그는 자신을 버리고서라도 관심을 얻고 싶어 했고 그게 남성운동이 성공하는 길이라고 믿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한강에 투신하는 순간을 트위터에 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에 대한 관심은 그가 사망한 이후에야 폭발했다.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1일까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성모병원에 차려진 그의 빈소에는 4000여 명이 몰렸다. 조문객 90% 이상이 10∼30대 남자였다. 빈소 앞엔 이름 없는 누리꾼이 보낸 조화 수십 개가 들어찼다. 그가 투신한 마포대교를 비롯한 전국 각지의 하천가 인근에는 자발적인 분향소가 차려졌고 처음 보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 모든 과정은 그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SNS로 생중계됐다.
성 대표의 SNS 활동이 대중의 관심을 끄는 덴 성공했을지라도 남성연대라는 시민단체를 운영하는 데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성 대표의 트위터 팔로어 수는 6만5000여 명에 달했지만 남성연대가 2011년 설립 이후 올해 5월까지 받은 후원금은 1956만 원에 불과했다. 굳이 계산해보면 그를 지지하는 팔로어 한 명당 300여 원씩 낸 꼴이다. 같은 기간 남성연대는 2억4670만 원을 썼다. 성 대표는 종종 남성연대를 후원해 달라는 글을 올렸지만 대부분의 팔로어들은 돈을 내지는 않았다. 일부 누리꾼은 남성연대 계좌에 ‘1원’만 입금시킨 사진을 인증샷으로 올리며 유희거리로 삼기도 했다.
남성연대 관계자는 “대표님이 쌓여가는 빚을 외면해 오다가 더는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극단적인 모금 퍼포먼스를 벌였다”며 “대표님이 SNS에서 자극적인 말로 관심을 끄는 데에만 집착해 정작 시민단체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한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도 “성 대표에게 집회를 함께 벌이자고 제안했었는데 이목을 끌지 못한다고 생각했는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이후 다시는 연락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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