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여학생들은 왜 화장실에 몰려다녀야 할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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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

어느 자리에서나 여성들의 ‘공적(公敵) 1호’는 정해져 있다. 남성들에게 잘 보이려고 혼자만 튀는 여자다. 이런 여자를 만나면, 모든 여성이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연대의 위력을 과시한다.

연대의 위력은 소문으로 금방 나타난다. ‘그 여우’는 소문으로 둘둘 말려 고립무원의 신세가 된다. 여성들에게 있어, 자신에 대한 악성 소문은 민감한 문제다. 오죽하면 여성의 건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고 있다는 느낌’을 꼽을까.

여성들의 ‘소문’은 ‘화장실’을 떠올리게 한다. 학생시절 화장실에 갈 때에는 반드시 친한 친구끼리 몰려간다. 가장 원초적인 행위를 하는 곳에서 거리낌 없는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유대감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다 자리에 없는 누군가가 도마에 오른다. 멤버들 간에 목격담과 성토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반감이 증폭되어 마침내 응징 계획으로 탈바꿈한다. 그래서 더욱 화장실 멤버에서 빠질 수 없다. 여성은 어린 시절부터 경쟁심이나 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곧바로 표출하기보다는 남들과 함께 사회적으로 처리하는 데 익숙하다. 대개는 근처에 있는 ‘다른 성향의 소녀’가 피해 대상이 되어 친구들로부터 외면당하는 동시에 좋지 않은 소문의 희생자가 된다. 이른바 따돌림이다.

남성이 삶을 경쟁에서 승리하는 과정으로 인식하는 데 비해 여성은 삶을 무리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안정된 관계를 유지하는 과정으로 인식한다. 갑자기 혼자가 되고나면 심리적 공황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관계 투쟁은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진다. 작은 사무실에서도 여직원이 세 명만 모이면 어김없이 편을 갈라가며 대립한다. 여성에게 있어 관계는 ‘성공을 위한 칼이자 방패’이다. 관계를 통해 원하는 바를 이뤄나가며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방어한다.

여성의 연대와 응징이 내숭 떠는 여자만을 겨냥하는 것은 아니다. 남성에게 인정받는 여자라면 누구나 그 표적이 될 가능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내가 받지 못한 관심을 받았다’는 시기심이 여성들 특유의 친근함과 동질성을 확인하려는 특성과 결합된다. 희생자의 모든 행동이 색다르게 해석되어 근거 없는 억측과 추문을 양산한다.

여성들의, 인기 있는 여자에 대한 경계심은 오랜 진화와 환경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남성의 관심을 모으는 여자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갈 기회(배우자)를 위협하는 이물질로 여겨진다. 체내에 들어온 이물질에 면역체계가 달려들어 공격하는 것처럼 여성들 역시 강력한 경쟁자를 에워싸 무력화시키는 셈이다. 여성들의 세상도 녹록지만은 않은 것이다.

한상복 작가
#화장실#여자#소문#경쟁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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