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서민과 중산층의 가벼운 지갑을 다시 얇게 하는 것은 정부의 경제정책과 어긋나는 것”이라며 정부가 내놓은 세제 개편안의 ‘원점 재검토’를 지시했다. 여야가 환영의 뜻을 밝힘에 따라 국회 논의 과정에서 수정안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은 세 부담 증가 기준선을 ‘연봉 3450만 원’에서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국민의 세 부담이 늘어나면 사실상 증세(增稅)다. 정부가 증세안을 마련한 이유는 뻔하다. 대선 복지 공약을 실현하기 위한 예산 때문이다. ‘복지=세금’이라는 등식은 상식이다. 그런데도 후보들은 증세를 말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증세 없는 복지’는 박근혜 후보의 선거 구호였다.
새누리당은 당정 협의 때 별 대안은 제시하지 않고 “중산층 증세는 곤란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러다 정부안이 발표되자 마치 증세안을 처음 본 것처럼 호들갑이다. 박 대통령의 공약 이행을 위해 135조 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누리당도 잘 안다. 세금을 더 안 걷고 무슨 수로 공약을 이행한다는 것인가.
이번 증세안의 세수 증대 효과는 내년부터 박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4년간 착실히 적용해 거둬들일 경우 8조1700억 원이다. 본란이 여러 차례 밝혔듯이 대선 공약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문재인 전 민주당 후보의 대선 공약은 더 심해 5년간 192조 원의 재원이 필요했다. 민주당은 지금 여당의 증세안을 맹공하고 있지만 만약 집권했다면 증세 없이 어떻게 이 돈을 마련할 것인가.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정부안에 대해 “재벌과 슈퍼리치는 그대로 놔둔 채 유리지갑만 털어 중산층을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사실이 아니다. 개정안에 따라 실제로 부담이 많이 늘어나는 계층은 고소득자들이다. 연소득 4000만∼5000만 원인 사람은 1년에 16만 원을 더 내야 하지만, 소득 1억∼1억1000만 원인 사람은 125만 원을 더 내야 한다. 대기업은 연구개발과 설비투자 등에 대한 각종 공제 축소로 세 부담 증가액의 55%를 부담해야 한다. 대선 때 복지공약 경쟁을 하던 정치권이 증세안이 나오자 ‘거짓말 경쟁’을 벌이는 듯하다.
국민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유권자들은 대선 과정에서 ‘복지 OK, 증세 NO’라는 실현 불가능한 공약을 요구했다. 그러나 공짜 복지, 공짜 점심은 없다. 기초연금, 무상교육 및 급식, 의료복지, 반값 등록금 등 달콤한 공약은 다 지키라고 하면서 세금은 안 내겠다고 하면 국채(國債) 발행 말고는 해법이 없다. 그러나 국채는 나라를 좀먹게 함이 해외 사례에서 명백히 드러났다. 경제 수준에 비해 취약한 복지체계를 보완하고, 고령화사회에 대비하려면 세금을 늘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저소득층의 표를 노린 복지 포퓰리즘 공약은 실천 단계로 넘어가는 순간 세금을 내야 하는 중산층의 지지를 잃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지금이라도 복지와 증세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를 이뤄야 한다. 그리고 복지 수준에 맞춰 합리적인 재원 마련 대책을 세워야 한다. 원하는 복지 수준과 그에 필요한 세금 문제를 언제까지 숨길 수는 없다. 국민에게 실상을 정확하게 알리고 합리적인 대안으로 경쟁하는 것이 정도(正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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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많은 댓글
2013-08-13 08:41:31
무리한 대선 공약은 엎으세요
2013-08-13 08:43:09
고 김대중 후보는 농가부채를 탕감하겠다는 대선 공약후 대통령 임기내에 농촌문제에 관하여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2013-08-14 00:39:45
행정수도 이전이 엄청난 돈이 들어 가고 잘 못된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약속은 이행해야 한다더니, 복지 약속은 어떻게 지킬 것인가? 약속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약속이 옳고 이행가능한지 판단을 해야지 표만 얻자고 뻔한 거짓말을 했다면 국민에게 사과하고 수정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