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민병선]샥스핀 맛도 모르고 자장면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4일 03시 00분


코멘트
민병선 문화부 기자
민병선 문화부 기자
영화가 뜨거운 계절이다. 여름 방학과 휴가 시즌이 겹쳐 극장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7월은 ‘장사’가 예년만 못했다. 225억 원을 들인 대작 ‘미스터 고’가 7월 17일 개봉하자 다른 영화들은 이 시기에 개봉을 피했다. 그런데 ‘미스터 고’가 관객의 기대에 못 미치자 극장에 사람이 줄었다.

8월 들어 한국 영화가 날개를 펴고 있다. ‘설국열차’는 관객 650만 명을 넘어 1000만 명을 바라보고 있다. 7월 말 동시에 개봉한 하정우 주연의 ‘더 테러 라이브’도 동반 흥행을 이어가며 300만 명을 넘었다.

하지만 기자는 두 영화의 선전이 반갑지만은 않다. 극장이 온통 이 영화들로만 채워지기 때문이다. ‘설국열차’는 현재 1000개 이상의 스크린을 차지하고 있다. ‘더 테러 라이브’도 700개 이상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 스크린은 2081개. 두 영화가 전체 스크린의 80% 이상을 점령했다. 스크린이 여럿이어서 골라 보는 재미가 있다는 멀티플렉스에 가 봐도 두 영화를 빼면 볼 게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해마다 이맘때면 나오는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올해도 반복되고 있다.

영화과 교수들이 나섰다. 전국 28개 대학 교수 56명은 “스크린 독과점 상영을 제한해야 한다는 내용의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을 국회에 촉구한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영화평론가협회도 같은 취지의 성명을 내놨다. 큰 영화의 극장 싹쓸이는 작은 영화의 설 자리를 빼앗는다. 골목 상권 보호를 위해 대형마트를 규제하듯, 스크린 싹쓸이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비등하다.

관객도 스크린 독과점의 피해자다. 선택권을 제한받아 다양한 문화적 혜택을 맛볼 수 없다. 인문학적 깊이가 있는 예술영화나 상상력이 뛰어난 독립영화는 볼 수가 없다. 관객을 끌기 위해 문화적 인공조미료(MSG)를 잔뜩 뿌린 상업영화만 판친다. 그래서 문화에 ‘취향은 없고 소비만 있는’ 현상이 발생한다. 한 평론가는 “관객이 자장면(상업영화)만 있는 게 아니라, 더 맛있는 샥스핀이나 불도장(예술영화)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 선진국 프랑스는 극장에 세제 혜택을 주는 대신 스크린 독점을 규제한다. 규정에 따르면 한 곳의 멀티플렉스는 한 영화의 프린트(상영 필름 또는 디지털 파일)를 두 벌 이상 보유할 수 없으며, 특정 영화가 전체 스크린의 30%를 초과할 수 없다.

‘설국열차’는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영화다. ‘더 테러 라이브’의 제작사 대표는 이춘연 한국영화단체연대회의 대표다. 이들은 모두 스크린 독과점 문제에 대해 바른 소리를 해온 이들이다. 봉 감독과 이 대표가 먼저 나서 자기 영화의 스크린 수를 줄이겠다고 선언하면 어떨까? 그러면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지적은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민병선 문화부 기자 bluedo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