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뜨거운 계절이다. 여름 방학과 휴가 시즌이 겹쳐 극장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7월은 ‘장사’가 예년만 못했다. 225억 원을 들인 대작 ‘미스터 고’가 7월 17일 개봉하자 다른 영화들은 이 시기에 개봉을 피했다. 그런데 ‘미스터 고’가 관객의 기대에 못 미치자 극장에 사람이 줄었다.
8월 들어 한국 영화가 날개를 펴고 있다. ‘설국열차’는 관객 650만 명을 넘어 1000만 명을 바라보고 있다. 7월 말 동시에 개봉한 하정우 주연의 ‘더 테러 라이브’도 동반 흥행을 이어가며 300만 명을 넘었다.
하지만 기자는 두 영화의 선전이 반갑지만은 않다. 극장이 온통 이 영화들로만 채워지기 때문이다. ‘설국열차’는 현재 1000개 이상의 스크린을 차지하고 있다. ‘더 테러 라이브’도 700개 이상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 스크린은 2081개. 두 영화가 전체 스크린의 80% 이상을 점령했다. 스크린이 여럿이어서 골라 보는 재미가 있다는 멀티플렉스에 가 봐도 두 영화를 빼면 볼 게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해마다 이맘때면 나오는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올해도 반복되고 있다.
영화과 교수들이 나섰다. 전국 28개 대학 교수 56명은 “스크린 독과점 상영을 제한해야 한다는 내용의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을 국회에 촉구한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영화평론가협회도 같은 취지의 성명을 내놨다. 큰 영화의 극장 싹쓸이는 작은 영화의 설 자리를 빼앗는다. 골목 상권 보호를 위해 대형마트를 규제하듯, 스크린 싹쓸이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비등하다.
관객도 스크린 독과점의 피해자다. 선택권을 제한받아 다양한 문화적 혜택을 맛볼 수 없다. 인문학적 깊이가 있는 예술영화나 상상력이 뛰어난 독립영화는 볼 수가 없다. 관객을 끌기 위해 문화적 인공조미료(MSG)를 잔뜩 뿌린 상업영화만 판친다. 그래서 문화에 ‘취향은 없고 소비만 있는’ 현상이 발생한다. 한 평론가는 “관객이 자장면(상업영화)만 있는 게 아니라, 더 맛있는 샥스핀이나 불도장(예술영화)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 선진국 프랑스는 극장에 세제 혜택을 주는 대신 스크린 독점을 규제한다. 규정에 따르면 한 곳의 멀티플렉스는 한 영화의 프린트(상영 필름 또는 디지털 파일)를 두 벌 이상 보유할 수 없으며, 특정 영화가 전체 스크린의 30%를 초과할 수 없다.
‘설국열차’는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영화다. ‘더 테러 라이브’의 제작사 대표는 이춘연 한국영화단체연대회의 대표다. 이들은 모두 스크린 독과점 문제에 대해 바른 소리를 해온 이들이다. 봉 감독과 이 대표가 먼저 나서 자기 영화의 스크린 수를 줄이겠다고 선언하면 어떨까? 그러면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지적은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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