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하태원]군 통수권자의 진수식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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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우를 해신(海神)의 노여움 정도로 알던 시절, 새로 만든 배를 처음으로 바다에 띄우는 의식은 대자연에 생명을 지켜달라고 비는 간절한 제례(祭禮)였다. 만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건, 해전에서 백전백승을 거두기 위해서건 정중한 의식이 필요했다. 이게 진수식(進水式)의 유래다. 육지의 독(dock)과 연결된 진수 테이프를 잘라내는 것은 새 생명과 모성(母性)을 연결하는 탯줄을 끊는 것과 같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나라에서 진수식을 주관하는 것은 여성이다. 영어 단어 배(ship)에는 여성성(she)이 부여됐다.

▷여성이 주관한 군함(軍艦) 진수식의 시초는 19세기 초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 전통을 따른 미국도 1827년 포함(砲艦) ‘콩코드호’ 진수식을 여성이 주도했다. 다만 ‘포츠머스에서 온 젊은 여성’으로만 언급돼 있어 누구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19년이 지난 1846년에 가서야 필라델피아 출신 명사(名士)의 딸 라비나 왓슨 양이 ‘저먼타운호’ 진수를 주관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일본은 여성을 고집하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행운을 가져온다는 은(銀)도끼로 테이프를 끊는 관습이 있다.

▷진수식의 또 다른 볼거리는 선수(船首) 부분에 ‘액체’가 든 병을 깨뜨리는 의식이다. 전통적으로 ‘레드와인’을 주로 사용했지만 때때로 위스키, 브랜디도 이용했다. 배를 만든 지역의 바닷물이나 강물을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하지만 20세기 이후는 샴페인이 대세다. 붉은 와인이 제물을 바친다는 의미라면, 샴페인은 축복의 뜻을 담고 있는 듯하다.

▷어제 박근혜 대통령이 군 통수권자로는 처음으로 진수식을 주관했다. 대통령 부인이나 국방장관 부인, 또는 해군참모총장의 부인이 하던 관례를 깬 것이다. 능숙한 솜씨였다. 41년 전 스무 살 때 스페인에서 열린 유조선 진수식을 주관했던 ‘느낌 아니까∼’. 일제강점기 청산리 전투의 영웅 김좌진 장군의 이름을 딴 4번째 1800t급 잠수함이 이제 우리의 영해를 지키게 됐다. 수면에 올라오지 않고 2주간 수중작전이 가능하고 연료 재충전 없이 하와이까지 갔다 올 수 있다니 백전불태(百戰不殆)를 기대할 만하다.

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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