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10월 전방 사단에서 대대장 유운학 중령이 무전병을 데리고 월북하는 사건이 터졌다. 군을 발칵 뒤집어놓은 사건이었지만 언론 통제가 강력하던 유신시대라 신문 방송에 한 줄도 보도되지 않았다. 당시 보안사는 유 중령이 북한에 의해 납치됐다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허위 보고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보안사의 보고를 신뢰하지 않고 합참과 김기춘 중정 대공수사국장에게 진상 조사를 시켰다.
이 중령은 사단 보안부대에 약점을 잡혀 고민하다 월북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국장의 조사 결과 일선의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 사단장들 사이에서는 보안사 등쌀에 못살겠다는 원성이 자자했다. 이 같은 보고를 받고 진노한 박 대통령은 보안사의 권한을 축소하는 개혁안을 김 국장에게 성안하도록 했다. 박 대통령은 김 국장이 올린 개혁안에 따라 보안사 정보처를 없애고 보안사 요원들을 정부 부처 및 기관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상의 이야기는 본인으로부터 몇 해 전 직접 들은 이야기를 기억에서 끄집어내 정리한 것이다.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 대통령을 시해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은 전두환 소장은 다시 보안사의 기능을 회복시켰다. 무장한 보안사 요원들은 대통령 시해 사건 다음 날인 27일 중정 고위간부 전원을 서빙고 분실로 연행해 연루 가능성을 조사했다. 중정 간부들은 일주일 동안 서빙고에서 계급장 없는 군복으로 갈아입고 혹독한 조사를 당하고 돌아왔다.
보안사 요원들이 중정을 접수했을 때 가장 먼저 찾은 사람이 김 국장이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천운(天運)이 도왔던지 그때 김 국장은 중정을 떠나 신직수 대통령법률특보 밑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아무리 막강 보안사라도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의 법률비서관을 서빙고 분실로 막무가내로 끌고 갈 수는 없었다.
김 국장은 친정인 검찰로 복귀한 뒤에도 천하의 권력을 움켜쥔 보안사 출신들의 시달림을 받았다. 1981년에는 전두환 보안사령관 비서실장을 지낸 허화평 대통령비서실 보좌관이 그를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시키고 아예 옷을 벗기려고 덤벼들었다. 이때 그가 허 보좌관에게 쓴 일종의 ‘충성 맹세’ 편지를 전달해주고 계속 밀어준 것이 박철언 전 의원이다(박 전 의원 회고록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 1’ 93∼95쪽). 법무부 검찰국장 때는 이철희 장영자 어음 사기사건과 관련해 말을 잘못했다가 전 대통령의 노여움을 사 한직인 법무연수원 연수부장으로 밀려났다. 그는 노태우 정부에서 화려하게 재기해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에 올랐다. 그야말로 오뚝이 인생이다.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요직을 지낸 그에게 ‘명석한 두뇌와 치밀한 논리’를 갖춘 검사라는 평판이 따라다녔지만 권위주의 시대에 권부(權府)에서 일을 하다 보니 적지 않은 때가 묻었다. 한태연 갈봉근 교수와 함께 유신헌법 초안 작성에 참여했다. 1974∼1979년 중정 대공수사국장을 하면서 유신 반대 사건 수사에 직간접으로 관여했다. 그가 검찰총장 재직 때 검찰이 삼양라면 대표 등을 제조공정에서 공업용 쇠기름을 사용한 혐의로 기소했으나 대법원에서 모두 무죄가 나왔다. 그가 1992년 대통령 선거 때 부산의 기관장들을 모아놓고 여당 후보 당선을 위해 지역감정을 불러일으키자는 말을 했던 초원복국집 사건도 떳떳하지 않은 전력이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 소추위원을 지낸 것을 문제 삼아 야당이 그를 공격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노 대통령 탄핵소추는 국회 재적 3분의 2를 넘는 의원들의 찬성으로 발의됐다. 박관용 국회의장이 경호권을 발동하고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킨 것이나 김기춘 법제사법위원장이 탄핵소추 청구인을 한 것은 법절차에 따른 권한 행사다.
김기춘 어록(語錄) 중에는 “연산군 밑에는 채홍사들이 들끓고 세종대왕 옆에는 집현전 학자들이 모였다”는 말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 밑에 어떤 사람들이 모여들지에 관해서 인사위원장은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국가에 마지막 봉사가 될지도 모르는 자리다. 김 실장은 고령에다가 솔직히 신선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지만 지금의 어려운 정치 상황은 흠이 없는 덕망가보다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국정 조정 능력을 발휘할 실장이 나을 수도 있다. 김 실장은 박 대통령에게 민심의 소리를 바로 전달해야 박 대통령을 성공한 대통령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두 장의 사진이 마음에 걸린다. 6일 국무회의장에 들어설 때 박 대통령 뒤에서 김 실장이 검찰 후배인 정홍원 총리보다 한발 앞서 걷는 장면이다. 실장의 권한이 너무 세지다 보면 총리와 장관들이 제 역할을 못하기 쉽다. 또 한 장의 사진은 박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으며 허리를 90도로 꺾은 모습이다. 시곗바늘이 권위주의 시대로 되돌아간 듯하다. 이런 자세로 박 대통령에게 직언을 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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