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7월 일본 도쿄 국제도서전에서 일본의 석학 가라타니 고진과 대담을 한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국은 일본에 비해 전통문화가 훨씬 많이 파괴됐다”고 말했다. 국내 인문학 분야의 권위자로 꼽히는 김 교수의 지적은 정확하고 타당하다. 선인들의 지혜와 경험이 농축된 고전 문헌들은 활용되지 못한 채 서고 속에 방치되어 있다. 한자를 모르는 세대가 늘고 있어 수천 년을 이어온 정신문화가 우리 세대에 이르러 단절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중요무형문화재 분야에서도 보유자가 없는 종목이 6개, 전수(傳受)조교가 없는 종목이 26개나 된다. 다른 종목도 보유자 다수가 고령이어서 앞날이 어둡다. 국악의 위기 역시 심각하다. 조선시대만 해도 국악은 예(禮)와 함께 나라의 기틀을 이루는 요소로 중시됐다. “시(詩)로 감흥을 일으키고 예로 질서를 세우며 악(樂)으로 인격을 완성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전부터 국악 지망생이 줄고 공연이 위축되어 있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국악이 일반인의 관심권에서 크게 벗어나 있는 현실이다.
▷정부의 지원 부족을 탓할 일만은 아닌 듯하다. 국악인 박범훈 씨에 따르면 우리나라처럼 국악 분야에 많은 지원을 해주는 나라도 드물다고 한다. 국악의 침체에는 사회 전반적으로 국악을 외면하는 분위기가 작용하고 있다. 올해 4월 일본 NHK TV는 저녁 9시 뉴스 첫머리에 도쿄 긴자의 가부키 극장이 재개관한다는 소식을 길게 보도했다. 중국인들이 경극에 갖고 있는 자부심도 대단하다. 이런 전통문화 중시 풍토가 우리나라에는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국립국악원이 ‘창경궁의 아침’이라는 공연을 마련했다. 17일부터 매주 토요일 오전 7시 반에 창경궁의 명정전과 통명전에서 국악을 연주한다고 한다. 국악 중에서 가장 완성된 형태는 역시 궁중 음악이다. 주말 아침 고즈넉한 고궁에서 울려 퍼지는 우리의 소리는 청중을 사로잡을 만하다. 대중에게 가까이 가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국악인도 현재의 위기에 책임이 크다. 아울러 국민도 국악에 좀 더 애정을 보일 필요가 있다. 요즘 유행하는 문구를 약간 바꾼다면 전통을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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