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 YS 만나 “신민당 총재 나오면 100% 구속할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6일 03시 00분


[허문명 기자가 쓰는 ‘김지하와 그의 시대’]<91>YS 당선

1979년 5월 30일 신민당 전당대회 전날 열린 대의원 단합대회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YS. 왼쪽에는 그를 지지하러 나온 DJ가 앉아서 박수를 치는 모습도 보인다. 동아일보DB
1979년 5월 30일 신민당 전당대회 전날 열린 대의원 단합대회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YS. 왼쪽에는 그를 지지하러 나온 DJ가 앉아서 박수를 치는 모습도 보인다. 동아일보DB
‘박치기’ 사건이 있고 난 10여 일 후 다시 청와대 기자단이 상춘재 아래 잔디밭에서 대통령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출입 기자들이 모두 여기저기 의자에 앉아 자리를 잡자 대통령이 엄숙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듣자 하니 지난번에 내가 실수를 한 모양인데, 이 자리를 빌려 강 기자에게 정식으로 사과합니다.”

대통령의 진지한 모습에 오히려 놀란 것은 기자들이었다. 사건 당사자인 강성재 기자도 “그 정도 일 가지고 정식 사과까지 하다니 나는 오히려 좌불안석이 되었다”고 말한다. 다시 강 기자의 회고록을 인용한다.

‘처음부터 분위기가 딱딱해지자 기자 한 사람이 와이셔츠 위에 걸쳐 입은 대통령의 스웨터를 가리키며 “각하, 입고 계시는 스웨터가 보기 좋은데요. 혹시 외제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대통령은 머쓱한 표정으로 오른손으로 목 뒤 스웨터를 뒤집어 상표까지 꺼내 보여주면서 “아니야, 보다시피 국산품이야, 요새는 국산도 잘 나와”라고 말했다.’

강 기자 말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박치기’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가 만찬이 끝난 며칠 뒤 ‘동아일보 출입기자가 교체될 것이라는 말들이 정가에 나돌고 있다’는 정보 보고를 보고 그날 밤 자초지종을 물어 알게 됐다는 것이었다. 이 대목에서 그는 당시 가까이에서 본 박 대통령의 모습을 함께 언급한다.

‘장기 집권(물론 이것이 치명적인 정치적 과오였지만)과 이에 따른 인권유린 및 정적(政敵)에 대한 가혹한 탄압, 그리고 만년의 여성 스캔들 등에 대한 평가는 극히 부정적인 것이지만, 대통령의 생활태도는 질박, 검소하기 짝이 없었다. 수십 년 매고 있다는 혁대, 매년 더운 여름철이면 꺼내 신던 백구두, 몇 벌 되지 않는 양복, 김치 깍두기 등 너덧 가지 반찬과 함께 내놓던 설렁탕, 그리고 화장지 하나라도 아껴 쓰려던 절약정신 등은 극히 인상적인 것이었다.’

한편, 상춘재 만찬 자리에서 YS에 대한 노골적인 감정을 표현한 일에 대해서도 박 대통령 스스로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 일이 있고 2주일이나 지난, 1979년 4월 5일 식목일 행사장 오찬자리에서 자신이 먼저 “실언을 했다”며 고백한 것이다. 이날 대통령은 성남시에서 나무를 심은 뒤 막걸리를 곁들여 점심을 했는데 술을 마시다 말고 동석한 기자들을 가리키면서 내무부 장관과 산림청장에게 이렇게 웃으면서 농(弄)을 했다.

“기자들에게 술을 많이 따라 주도록 하시오. 그래야만 술에 취해 내가 설사 실언(失言)을 하더라도 못 쓸 것 아니오.”

어떻든, “김영삼은 절대 안 된다”는 박 대통령의 본심을 ‘정확히’ 간파한 정보부는 곧 있을 신민당 전당대회(5월 30일)에서 어떻게 해서든 YS를 떨어뜨리기 위해 갖가지 정치공작에 들어간다. YS 회고록 ‘민주주의를 위한 나의 투쟁’(2000년)에는 이렇게 나온다.

‘무엇보다 경선을 진행할 자금원이 완전히 봉쇄되었다. 20여 년간의 국회의원 생활로 지면(知面)이 상당히 넓었던 나로서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만큼 철저하게 봉쇄당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동영 의원이 선뜻 나서 자신의 집을 저당잡히고 빌린 돈을 내놓아 겨우 경선을 준비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정보부는 아예 YS 본인에게 직접 압력을 가해 후보 사퇴를 강권하는 수법까지 썼다. 김재규 정보부장이 직접 나섰다. 다시 YS의 회고다.

‘5·30 전당대회 며칠 전 밤중에 롯데호텔 객실에서 김재규 정보부장과 몇 시간 동안 단독 면담을 했다. 면담을 주선한 사람은 나와 본(本)이 같은 김녕(金寧) 김씨 문중 사람이었다. 김재규는 나에게 “피는 물보다 진합니다”고 말했다. 자신도 같은 김녕 김씨임을 강조한 말이었다. 그러면서 총재 후보 사퇴를 끈질기게 부탁했다. “대통령 각하의 생각이 확고합니다. 김 총재도 생각해 보십시오. 정권에 도전하는 사람을 그분이 가만두겠습니까?” 그러면서 “총재 경선을 강행하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며 위협하기도 했고, 총재 출마를 포기하고 그들이 지원하는 모(某)씨를 지지하라 하기도 했다…나는 “박정희가 보통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총재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온다고 해도 선거가 끝나면 100% 구속합니다” 하는 말까지 들었다.’

YS는 그의 제안을 앉은 자리에서 일축했다. 그러고 “어떤 일이 있어도 입후보해 반드시 총재로 당선되겠다”고 말했다.

정보부의 공작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전당대회를 목전에 둔 5월 18일 경찰은 YS가 대의원들에게 배포하려고 준비하던 문건을 빼앗아간 데 이어 측근들을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상도동 집까지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한다.

YS는 동교동 자택을 찾아 DJ에게 지지를 부탁한다. 그때까지 줄곧 정당 바깥에서 반정부 운동을 하던 윤보선 전 대통령과 DJ도 침묵을 깨고 YS를 밀게 된다. DJ는 전당대회 D―1인 5월 29일 열린 YS 지지 대의원 단합대회 장소에 나타나 열변을 토한다. 유신 이후 매스컴에서 사라졌던 그의 얼굴을 본 대의원들은 함성과 흥분으로 그를 맞았다.

마침내 79년 신민당 5·30 전당대회장. 이날 행사는 정치가 쓸려나간 폐허 위에 정치 열기를 불사르기 시작한 행사라고 할 수 있다. 야당과 재야, 정보부나 경호실만의 관심이 아니라 전 국민의 눈과 귀가 쏠린 정치행사였다.

정보부의 갖은 공작에도 불구하고 이날 서울 마포 새 당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YS는 2차 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재석 과반수인 376표보다 아슬아슬하게 2표 많은 378표를 얻어 이철승 후보를 누르고 총재에 재선된다. 대역전 드라마였다.

2년 8개월 전에 당권을 잃고 절치부심하던 YS가 52세라는 젊은 나이로 제1야당 당수 직에 복귀했다. 그의 가슴 속엔 박정희 정권을 향한 ‘칼’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바로 두 달여 뒤 이 칼끝은 박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한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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