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SNS에서는]‘답정너’족(族) 퇴치법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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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나… 전교 3등 했어. 엄마한테 혼날 거 같아. 어쩌지?”

이렇게 말하는 친구는 반에서 중상위권을 유지하는 아이였습니다. 덜컹거리는 버스 안. 반에서 3등도 아닌데 전교 3등이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너 지금 누구 얘기 하는 거야?”라고 말을 하려던 순간, 그 친구는 음성을 ‘으깨듯’ 복화술로 나지막이 얘기했습니다.

“는 그능 흐응믄 흐믄드…(넌 그냥 호응만 하면 돼).”

그러면서 친구는 버스 안 승객들이 다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더 크게 얘기했습니다. “전교 1등만 하다가 처음으로 성적 떨어졌어…. 나 이러다 대학은 갈 수 있을까?” 승객들은 그 친구를 흘끔흘끔 보며 “공부 잘하나봐” “부럽다”는 눈치였습니다. 사람들이 수군거리자 그 친구는 팔꿈치로 저를 쳤습니다. ‘호응’이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마지못해 답해 줬습니다. “그, 그래, 히, 힘내. 전교 3등….”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저는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친구는 당연한 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재미있잖아. 사람들 부러워하는 표정 죽이지?” 친구는 거짓 상황을 만들어서라도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싶었던 겁니다. 10년도 더 된 일입니다. 사람들 많은 곳에서 이런 상황극을 즐겼던 그 친구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납니다.

그런데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그때 그 친구와 비슷한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을 가리켜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어. 너는 대답만 하면 돼)’족(族)이라고 말합니다. 상대방에게 질문을 하기는 하지만 결국 본인 칭찬이나 편들어주는 답을 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일컫는 SNS 신조어입니다. 유형은 크게 “170cm에 48kg이면 좀 살찐 편이죠?”나 “나 요즘 살쪘지? ‘44 사이즈’ 원피스 입었는데 딱 맞아”처럼 ‘외모’ 부분과 “남자 나이 서른에 연봉 5000만 원 받으면 나쁘지 않은 수준인가요?”, “토익 950점 받았는데 취업할 때 불이익 있을까요?”같이 ‘능력’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을 듣는 상당수 사람들은 “짜증 난다”며 이들과의 대화 내용을 SNS에 공개합니다. 최근에는 ‘답정너족 퇴치법’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그중 하나는 ‘무시’입니다. 이런 식이죠.

―A: “오늘 동아리 오빠들이 나보고 김태희 닮았대. 어떻게 생각해?”

―B: “메시지 전송이 실패했습니다.”

상대가 원하지 않는 답으로 좌절감을 주는 방법도 있습니다.

―C: “서울대 나왔는데 학벌로 무시당할까봐 걱정입니다,”

―D: “전 하버드대 출신인데 상당히 놀았나보네요.”

중년 답정너 분들에겐 정중하고 간결하게 답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E: “우리 아들 공부 좀 해야 하는데…. 대학도 간신히 차석으로 졸업 했고 이번에 S그룹도 겨우 들어갔다고. 걱정이야.”

―F: “아, 네 알겠습니다.”

‘자기 자랑’을 하는 본인은 상대가 각본대로 답을 해주길 원하지만 그렇지 않을 땐 불안해합니다. 사람들이 촘촘히 모여 있는 SNS 세상에서 자신이 예쁜지, 내 능력이 뛰어난지 틈날 때마다 확인받고 싶고, 확인이 끝나면 비로소 “아, 난 당당해도 되겠구나”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SNS를 통해 사람들과 연락하기도, 대화하기도 더 쉬워졌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반대입니다. 오히려 “곁에 아무도 없다”며 외로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이 있습니다. 불안한 세상, 정답이 없는 인생. ‘답정너’족이 진정으로 원하는 답은 ‘관심’ 아닐까요. 다만 필요 이상으로 관심을 원하고 ‘답’을 남에게 강요한다는 게 문제죠. “답은 정해져 있어. 너는 대답만 하면 돼”라고 말하는 이들을 뜨끔하게 하는 ‘답정너족 퇴치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답은 정해져 있어. 옜다, 관심!”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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