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주펑]동아시아 정치의 ‘일본 딜레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9일 03시 00분


주펑(朱鋒)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
주펑(朱鋒)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
8월 15일은 일본 제국주의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날이며 아시아 각국이 반(反)파시즘 반군국주의 항전에서 승리한 날이다. 전쟁의 승패와 일본의 죄행을 역사에 못 박는 것은 일제의 피해자들을 위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자 오늘날 동아시아의 평화와 자유, 개방적 질서를 수호하는 중요한 기초다. 하지만 일본의 역사 문제에 대한 인식은 점점 흐릿해지고 있으며 역사 수정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자민당 고위 인사들이 강한 우익적 성향을 띠고 있다는 것은 이젠 비밀도 아니다. 아베는 지난해 12월 26일 집권 이후 역사 문제에서 여러 차례 도발했다. ‘침략’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다고 했으며 일본군위안부 제도도 인정하지 않았다. 15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제2차 세계대전의 일본군인들을 기념할 것을 호소했다. 아베 정부는 ‘일본 황군’과 ‘각종 범죄자’의 행위도 ‘애국론’으로 포장했다. 역사 수정주의가 사상 최고조인 상태다.

일본의 우경화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바로 ‘2차대전 원죄론’이 ‘애국론’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아베가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하지 않고 개인 기부만 했다고 하지만 일본 정치인의 참배 규모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지난해 8·15때 신사 참배를 강행한 의원은 55명이지만 올해는 102명이다. 지난해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전 총리는 “일본은 아시아 각국에 재난을 안겨 준 데 대해 계속 반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올해 아베 정부는 일본 국민에게 전몰 용사들을 추모할 것만 요구했다.

미국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은 7일 일본에서 열린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68주년 행사에 참석해 “일본은 왜 독일처럼 군국주의 역사를 반성할 수 없느냐”고 질문했다. 또 아베에게 “나는 더는 당신을 믿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말은 서방의 시각에서 일본의 수정주의 역사관을 가장 명확하게 비판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 언론은 스톤 감독의 발언을 보도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도 이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

아베 정부가 역사 수정주의를 밀어붙이는 목적은 ‘새로운 국가 중심주의’를 수립하려는 데 있다. ‘천황(일왕)’ 체제를 중심으로 하는 국가관은 아베 총리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를 비롯한 일본 우익의 핵심적인 정치 논리다. 2차 세계대전의 그늘 속에서 국민을 끌어내고 ‘일본이 돌아왔다’는 아베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기제다. 여기에 더해 ‘아베노믹스’를 실현해 일본 경제를 부활시킴으로써 ‘중국의 굴기(굴起)’에 대응할 정신적 물질적 동력을 찾겠다는 의도 또한 깔려 있다. 이 때문에 침략행위는 부정하지 않지만 침략자들에 대한 역사적 심판은 부정한다. 또 침략이 초래한 비극은 부정하지 않지만 침략자들의 행위가 국가적 정의(正義)에 위배된다는 것은 부정한다. 이는 1948년 전범 재판 결과를 부정하는 것이고 2차 세계대전 이래 그 어떤 정치 이데올로기도 자유와 공평, 정의를 지켜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인식을 부인하는 것이다.

일본은 중국과 한국이 일본의 역사 문제를 계속 물고 늘어진다며 불평한다. 그러나 일본의 잘못된 역사 인식과 가열되는 수정사관은 한중 양국과 국제사회로 하여금 일본을 용인할 수 없게 하고 있다. 아베 정부와 일본 우익이 계속 군국주의 시대 ‘황군’의 혼을 불러들이고 전쟁영웅으로 애도한다면 일본은 아시아 정치의 가장 큰 문제집단이 될 것이다.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 즉 평화를 준수하는 일본을 더는 만나 볼 수 없게 할 것이며 역사적 분쟁과 가치 대립을 불러일으켜 일본과 주변 국가 사이에 더욱 큰 분쟁을 초래할 것이다.

주펑(朱鋒)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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