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와 더불어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평가받는 마티스는 70세가 지나 독특한 방식의 그림을 선보였다. 긴 대나무 막대 끝에 목탄을 묶어 초상화를 그리거나 모델에게 종이에 빨강, 파랑, 노랑, 녹색 과슈(불투명수채) 물감을 칠하게 한 다음 자신이 직접 연필로 드로잉하고 가위로 오려 화폭에 붙이곤 했다. 마티스는 왜 미술사의 대가들이 시도한 적 없는 이런 파격적인 방식의 그림을 그렸던 걸까?
1941년 십이지장암 수술을 받은 이후 건강이 악화돼 더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침대에 누워 있어야만 했던 마티스에게 질병의 고통보다 더 무서운 것은 창작을 중단하는 것에 따른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노(老)대가는 절망하지 않고 중증환자도 얼마든지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을 대나무 막대와 가위로 그린 그림으로 보여주었다. 운명에 굴하지 않고 창작 혼을 불태우던 거장의 모습은 ‘20세기 전쟁 사진의 전설’로 불리는 로버트 카파에게도 큰 감명을 주었다.
사진은 방스(Vence)의 로자리오 성당 제단을 장식할 벽화 밑그림을 그리는 마티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것인데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리는 ‘로버트 카파 탄생 100주년 기념사진전’에 가면 감상할 수 있다. 마티스의 어록에는 새로운 기법을 개발한 동기가 드러나 있다.
‘나는 정신 나간 늙은이지. 만족에 겨워 눈을 감기 위해서 죽기 전에 그림을 새롭게 시작하려는 야망에 불타고 있으니 말이야.…나의 여생이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당치도 않은 일이지. 그런데도 나 자신의 예술관을 지키기 위해서는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어.’
긴 장대 목탄으로 그려진 로자리오 성당 벽화는 한 예술가가 질병의 고통에 어떻게 반응했는지, 최후의 순간에 어떤 영웅적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려주는 소중한 증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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