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재명]걸그룹 이념 논쟁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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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핑 예! 점핑 예! Everybody.’ 멤버 5명이 번갈아 제자리 뛰기를 한다. 자동차 엔진 실린더의 피스톤 운동이 떠오른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직렬 5기통’ 춤. 별 의미 없는 가사가 귓가를 맴돌고 괜히 어깨가 들썩여진다. 전혀 섹시하지 않은 ‘털털 코드’ 의상도 이채롭다. 세상에 오토바이 헬멧을 쓴 걸그룹이라니…. 교복과 트레이닝복의 중간쯤 되는 ‘교리닝’을 입고 등장한 ‘크레용팝’이 ‘빠빠빠’란 노래로 올여름 가요계를 달구고 있다.

▷‘올해는 용필(조용필) 다음은 용팝(크레용팝)’이란 말까지 만들어 낸 ‘귀요미’ 걸그룹이 때아닌 이념 논쟁에 휩싸였다. 방송인 김제동처럼 어록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빠빠빠’에 무슨 숨겨진 암호라도 있는 것일까. 논란은 6월 한 멤버가 트위터에 ‘오늘 여러분 노무노무(너무너무) 멋졌던 거 알죠?’라며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올리면서 시작됐다. 이어 지난달 소속사에서 올린 동영상에서 한 멤버가 커피를 가져오며 쩔뚝거리자 다른 멤버가 “쩔뚝이 아니에요?”라고 말하면서 확산됐다.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면 극히 정상이다.

▷‘노무노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쩔뚝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하한 표현이라는 게 일부 누리꾼의 주장이다. 강경 우파 성향 사이트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등에서 널리 쓰이는 표현이란다. 이런 ‘맥락 없는’ 공격에 화가 난 크레용팝의 한 멤버는 이런 글을 올렸다. ‘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의(豕眼見惟豕 佛眼見惟佛矣).’ 돼지 눈에는 돼지만,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는 뜻이다. 그러자 좌파 진영 누리꾼들은 들끓었다. 너무 똑똑해도 화를 부른다.

▷급기야 온라인 마켓 ‘옥션’은 일부 누리꾼의 회원 탈퇴 압박에 크레용팝을 모델로 내세운 자사 광고를 게재 하루 만에 중단했다. 크레용팝의 성공 비결을 다룬 다큐멘터리 제작도 취소됐단다. 크레용팝의 소속사는 어제 홈페이지에 “크레용팝은 정치적 성향 같은 것은 모른다”며 사과문을 올려 진화에 나섰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일베’에서 뒤통수를 맞았다며 난리다. 이념이 넘치다 못해 무기가 되는 사회에서는 걸그룹 하기도 쉽지 않다.

이재명 논설위원 egija@donga.com
#크레용팝#일베#우파#정치적 성향#노무노무#쩔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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