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 닿아 이청준 작가의 단편집 ‘별을 보여드립니다’의 복간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복간본 옆에 나란히 진열된 초판본의 낯익은 표지를 보자 무척 반가웠다. 문학소녀 시절 그 책을 사서 비닐로 씌워 아껴가며 읽었던 추억 때문이다. 애지중지 보관하다 언제부터인지 잊고 지냈고 그러다 잃어버려 아쉬웠는데, 무명옷처럼 하얀 표지로 갈아입고 내 손 안에 다시 들어오다니, 인연이다.
세상일이 다 인연인 것 같다. 1971년도에 초판본이 나온 이 책을 복간하게 된 사연도 그랬다. 절판된 이 책을 다시 세상에 내놓은 열화당 출판사의 이기웅 대표는 1971년 당시에 일지사의 편집장으로 근무하면서 초판본의 발행을 주도했던 깊은 인연 때문에 이청준 작가의 5주기에 맞추어 추모 기념 출판을 했다고 말했다.
상업성을 개의치 않고 세상에 나와야 할 책은 기어이 만들고야 마는 이 대표는 “염(殮)을 하듯이 만들었습니다”라고 인사말을 했다. 비장했다. 죽은 사람에 대한 마지막 의식인 염을 하듯이 책에 공을 들이고 정성을 다했다는 그분의 진심이 전해져왔다. 진지함이 사라져가는 이 시대에 염을 하는 심정이 아니라면 밤을 새워가며 혼을 불어 넣는 출판 작업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책의 제목으로도 쓰인 단편 ‘별을 보여드립니다’에서 “사람을 사랑해본 적이 없는 녀석들이 어떻게 하늘의 별을 볼 수 있느냐 말야”라고 말하는 구절이 있다. 책을 다시 읽다 보니 젊은 날에는 채 깨닫지 못한 행간의 뜻이 지천명의 나이에 이르러서야 가슴에 닿는다. 이청준 작가의 말대로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별을 볼 일도, 책을 만들 일도 없을지 모른다.
내가 제대로 천체망원경을 통해 별을 본 것은 남편이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난 다음 날이었다. 소위 좋은 직장은 늘 바쁘기 마련이어서 좀처럼 ‘별 볼 일 없는’ 삶이기 일쑤다. 자유의 몸이 되자 우린 농담처럼 이제부터는 별 볼 일 있게 살자며 별을 보러 떠났다.
변산반도에서 조각가 김오성 선생이 운영하는 금구원 천문대에 도착했다. 밤이 깊어지자 그는 하늘로 향한 돔을 열고 천체망원경의 배율을 맞추어 우리에게 토성과 시리우스 같은 별들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저 숱한 별 중에는 이미 사라진 별도 있을지 모른다는 말을 했다. 별빛이 우리에게 도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동안에 별 자체는 사라졌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슴이 시렸다. 우리도 언젠가 실체는 사라지련만 누군가에게 빛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이미 5년 전에 별이 되어버린 이청준 작가는 ‘별을 보여드립니다’로 빛을 발하고, 가치 있는 책을 남기기 위해 눈물겹게 노력한 분들 또한 후세에 오래도록 빛을 전해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살아오는 동안 염을 하듯이 정성을 다한 일이 있기나 한 걸까? 별을 보며 자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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