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과 지내려다 새벽을 지날 때, 망각을 위한 노래를 부르다 선명해진 악보를 다시 읽기도 했다
한사코 지내려던 것들이 스르르 지나는 때가 있다 여름아, 부르면 소매 밖으로 팔이 나오듯
나와 지내려다 나를 지날 때, 물음표들을 수없이 피우다 마침표 없이 문장을 닫기도 했다
‘지내다’는 ‘살아가다’ ‘머물다’, ‘지나다’는 ‘흘러가다’ ‘끝나다’ ‘엇갈려 스쳐가다’라는 뜻이다. 언뜻 친연관계일 듯싶지만 의미 연결이 없는 동사들, 오히려 대립하고 있는 말 ‘지내다’와 ‘지나다’를 연결시켜 여운 깊은 대위법을 보여주는 시!
인연 닿은 것들을 모두 그러안고 살 수는 없다. 그러기는커녕 우리는 대개의 인연을 지나 보낸다. 잡으려면 연기처럼 사라지고, 잡으려면 연기처럼 사라지고. 잡고 싶었는데,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놓쳐버린 것들. 같이 살고 싶었는데 가버린 것들! 그 아쉬움과 쓸쓸함을 절절하게 뽑아내는 시인의 솜씨가 대단하다. 꼭 그래야만 했을까? 왜 그렇게 됐을까? 숱한 물음표가 펄럭거리지만, 알 수 없는 채로 시절이 닫힌다. 아니, ‘물음표들을 수없이 피우다/마침표 없이 문장을 닫기도 했다’, 시인이 시절을 닫는다. 쓸쓸하지만, 쓸쓸함을 삶의 신비로움으로 넘긴다. 그 속이 휴화산일 테지. 언제라도 물음표들이 치받아 오를 테지.
이십 대는 아픔이고 열정이고 미련이고, 크레용처럼 진하다. 어긋나고 스쳐가는 것들에 대해 가슴 찢어지고 미칠 것 같고, 감정의 파도가 산처럼 일어났다 무너지곤 하기 마련이다. 나이가 들면 어지간한 일에는 가슴 치고 발 동동 구르고, 그러지 않는다. 사랑을 잃어도 돈을 잃어도, 그냥 조금 아쉽고 미안하고, 그러다가 며칠 지나면 잊어버리거나 넘겨버린다. 나이 든다는 건 편안하게 쓸쓸한 일이다. 나만 그런가? 아, 어쨌든 있을 때 잘하자! 이 말의 깊은 뜻도 젊을 때는 잘 모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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