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한류스타 초신성, 日 여성팬 구름처럼 몰고 다녀
한일 관계 싸늘하지만 가요 한류 열기는 뜨거워
스포츠 스타와 아이돌, 국가 브랜드 가치 높이는 소리 없는 애국자
초신성(超新星)은 숨겨진 한류 스타다. 일본에선 1만 석, 2만 석짜리 체육관 공연이 인터넷에서 10여 분 만에 매진되는 인기를 누리는 아이돌 그룹이지만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다다이마(돌아왔습니다).”
8월 14일 일본 요코하마 아레나(경기장)에서 아이돌 그룹 초신세이(超新星)의 리더 정윤학(일본명 유나쿠)이 무대 위에 올라 터뜨린
일성(一聲)이다. 객석을 가득 메운 1만2000여 여성 팬들이 랜턴을 흔들며 환호성을 질렀다. 윤학이 군 생활을 회고하며 “영하 20도의 혹한에 야영훈련을 나가 텐트에서 자는데 너무 추워 남자들끼리 끌어안고 잤다”고 말하자 폭소가 터져 나왔다. 초신성 멤버들의 토크쇼는 윤학의 군대 이야기로 채워졌다. 한국 여성들은 남자들이 군대 이야기를 하면 재미없다고 고개를 돌리는데, 일본 여성들은 한국 아이돌 가수의 군 생활 경험을 비싼 입장료를 내고 흥미롭게 들었다.
윤학이 1년 10개월 전 군 입대를 앞두고 도쿄인근 사이타마 아레나에서 팬 미팅을 할 때는 2만여 여성들이 이별을 아쉬워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윤학이 입대할 때 초신성 멤버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초신성이 막 일본에서 뜨는 찰나에 리더가 2년 가까이 모습을 감추면 잊혀진 존재가 돼버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공연한 걱정이었다. 윤학이 군 생활을 마치고 전역하던 7월 24일 3군사령부 앞에는 보슬비 속에 일본 여성 팬들이 타고 온 관광버스 45대가 줄을 지었다. 윤학의 제대 모습을 보기 위해 2박 3일 일정에 160만 원짜리 여행상품을 사서 한국에 온 열혈 팬들이었다. 일본 여성들은 ‘기다렸어’라고 쓰인 한글 피켓을 들고 “유나쿠”를 연호했다.
3군사령부 정문 앞의 일본 팬들 속에는 의사국가고시를 며칠 앞둔 의과대학생 미도리(27)와 어머니도 있었다. 아버지는 성공한 변호사다. 어머니는 국가고시를 앞둔 딸이 책을 펴놓고 늘 헤드셋을 끼고 윤학의 노래를 들어 “저래서 공부가 되겠나” 하고 걱정이 컸다. 그러면서도 국가고시 사흘 전 윤학의 ‘자유의 날’을 축하하기 위해 딸과 같이 한국에 왔다. 그 어머니에 그 딸이다. 미도리는 윤학에게서 “힘내세요”라는 글씨와 사인을 받았다. 그 덕인지 미도리는 국가고시에 합격했다. 어머니는 “윤학의 노래와 응원 글씨가 딸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해석했다.
윤학은 한국에선 무명(無名)인지라 연예병사가 못 됐다. 그러나 추문이 잇따른 연예병사 출신이 아니라서 제대 후에는 더 명예로워졌다. 3군사령부 군악대에서 그는 민경훈, 테이 같은 노래 잘하는 가수들과 틈틈이 연습을 했다. 윤학을 모르던 3군사령부 병사들도 일본 여성들로부터 하루에 팬레터가 100통씩 몰려오자 그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윤학 덕분에 일본 여성 팬들이 보낸 과자를 나누어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윤학은 슈퍼주니어 이특, 뮤지컬 배우 김무열, 탤런트 지현우와 함께 6·25전쟁을 다룬 뮤지컬 ‘더 프라미스’를 국립극장에서 공연했다. 6개월에 걸친 연습 과정과 공연이 가창력을 키우는 데 크게 도움이 됐다고 술회한다.
그의 복귀와 함께 초신성은 일본에서 인기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고 지명도가 높은 오리콘차트에서 2위를 기록했다. 일본 타워레코드 주간 종합차트에서는 1위를 했다. 윤학은 일본 프로야구대회에 나가 시구를 했고 일본 영화에 주연으로 스카우트됐다.
초신성 멤버 6명은 한결같이 키가 훌쩍 큰 꽃미남에 댄스가 파워풀하다. 윤학은 ‘왕의 남자’의 이준기를 닮았다. 초신성이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데는 윤학의 위트 있는 일본어가 일조를 한다. 윤학은 한국에서 중앙대사범대부속고교를 다닐 때 일본 국비장학생으로 뽑혀 아이치대를 졸업했다. 한류 아이돌 장학금을 일본 정부로부터 탄 셈이다. 그는 NHK에서 한국어 강좌를 맡았을 만큼 일본어 실력이 탁월하다.
아베 신조 총리, 아소 다로 부총리는 전쟁 범죄를 부인하고 군위안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발언으로 한국인의 분노를 사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가요 한류는 여전히 뜨겁다. 초신성 공연장에서는 한일 관계의 불편함을 전혀 느낄 수 없다. 한국에서 일본 가수가 체육관에 1만, 2만여 여성들을 모아놓고 노래가 끝날 때마다 박수갈채를 받았다면 마음이 불편한 사람이 많이 생겼을 것이다.
초신성은 9월 2일부터 삿포로를 시작으로 11개 도시에서 전국 투어 공연을 벌인다. 표는 오래전에 다 팔렸다. 채널A는 한국 방송 중 처음으로 일요일인 9월 1일 오전 9시 ‘논설주간의 세상 보기’에서 윤학의 인터뷰를 내보낸다. 김연아 박인비 같은 스포츠 스타 그리고 한류 아이돌은 국가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소리 없는 애국자들이다.<도쿄에서>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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