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지철 “경호헬기 무거워진다”며 수행단서 김재규 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30일 03시 00분


[허문명 기자가 쓰는 ‘김지하와 그의 시대’]<101>10월 26일 오전

1979년 10월 26일 박 대통령이 삽교호 준공식에 참석해 배수갑문 스위치를 누르는 모습. 고인의 생애 마지막 공식행사 사진이다. 동아일보DB
1979년 10월 26일 박 대통령이 삽교호 준공식에 참석해 배수갑문 스위치를 누르는 모습. 고인의 생애 마지막 공식행사 사진이다. 동아일보DB
1979년 10월 26일은 구름 한 점 없이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이 청명한 날이었다. 박 대통령은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에 갈 예정이었다. 비서진은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 준비사항을 점검했다. 삽교천 방조제는 삽교천 하구를 가로막은 인공 담수호로 충청남도 4개의 시군 지역을 대단위 전천후농지로 개발하기 위한 농업종합개발사업(1975∼1983)의 일환이었다.

김계원 비서실장은 늘 그랬듯 오전 8시에 시작하는 수석비서관 회의를 마치고 오전 9시 대통령 집무실로 가서 주요 업무보고와 결재를 마쳤다. 행사장까지 가는 길은 경호실에서 3대의 헬리콥터를 준비했다. 탑승 인원을 점검해 보니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빠져 있었다. 차지철 경호실장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안전운항을 위해 중량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는 답이 왔다. 어쩐지 찜찜했다.

세간에는 이날 대통령 공식일정으로 삽교천 준공식만 알려져 있는데 또 다른 공식행사도 있었다. KBS 당진 송신소에 들르는 일이었다. 최서영 전 코리아헤럴드·내외경제 사장은 관훈저널 2012년 9월호에 ‘큰 기폭제가 된 작은 불씨’라는 제목으로 당시 행사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그의 이야기다.

‘나는 KBS 방송담당 이사로 있었다. … 박 대통령의 그날 일정은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 참석이었지만 바로 서울로 온 것이 아니라 당진(唐津)에 있는 KBS 단파방송 송신소를 찾아 기념식수를 하고 대북(對北)방송 현황을 보고받는 행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 이 행사가 (공식) 발표되지 않은 이유는 KBS 당진송신소가 공산권에 대한 심리전 방송의 기간시설이었기 때문에 국가보안상 밝힐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물론이고 시베리아와 먼 중앙아시아 공산국가(몽골,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까지 방송 청취가 가능하도록 단파출력을 강화한 송신소 보강공사는 KBS와 중앙정보부 관계자들이 몇 달 동안 철야작업을 해가면서 애써온 사업이었다. 나도 몇 번 현장을 가본 일이 있다.’

그런데 행사 전날인 10월 25일, 돌연 경호실로부터 연락이 온다. 최 전 사장은 “대통령은 예정대로 참석하지만 정보부장이 빠지게 되었으니 방송사 측도 참석인원을 줄이라는 통보였다”고 회고한다. 다시 그의 말이다.

‘그래서 KBS에서는 사장과 기술담당 이사만 참석하고 나는 빠지게 되었다. 중앙정보부가 주동이 되어 만든 시설 준공 행사에, 그것도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에 정보부장이 빠진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잘 되지 않았다. … 내가 듣기로는 김 부장이 당진송신소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온갖 준비를 다 해놓고 있었는데 갑자기 “참석하지 말고 부마사태에 대비하라”는 연락을 받자 책상을 내리치며 분개했다는 것이다. … 역사에 가정은 무의미한 것이지만, 만약 그날 김 부장이 행사에 참석해 대통령으로부터 “수고 많이 했네”라는 칭찬과 격려의 말이라도 한마디 들었더라면 (그날 저녁) 궁정동 안가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헬기에 대통령과 함께 동승한 김계원 비서실장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이날 유난히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그의 회고록에 나오는 대목이다.

‘비행 중에 대통령은 쌍안경으로 관심이 가는 지상 시설물을 일일이 살폈다. 반월공단 위로 날아가는 도중에 준비한 지도를 펼치고 각 공단 시설물 위치를 확인하시며 아산만의 굴뚝에 흰 연기가 피어오르는 화력발전소를 일일이 가리키며 나에게 변천된 국토의 모습을 감회 깊게 설명해주셨다. “각하! 아직도 초가집이 드문드문 보이는군요.” 대만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는 나는(그는 중국 대사 8년 임기를 마치고 78년 12월 비서실장이 되었다) 농촌의 놀랍게 변화된 모습을 오랜만에 직접 보면서 대통령께 화제를 돌리기 위해 이런 질문을 드렸다. (그랬더니 대통령은) “우선 큰길가 쪽 집부터 하고 있소. 김 실장! 이렇게 농촌의 지붕 하나 고치는 것도 참으로 어려워…” 했다. 대통령은 아산만 곡창지대 위를 지나며 상공에서 내려다 본 추수가 끝난 넓은 평야를 보고 흡족해하셨다.’

헬기가 방조제 기념식장인 당진군 신평면 운정리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 2분. 대통령은 주민들의 박수를 받으며 세찬 바람 속에 50m가량을 걸어서 단상 위에 올라 이렇게 치사했다. “국토개발이 곧 국력의 원천입니다. 삽교천 방조제의 준공으로 농업종합개발사업이 끝나는 1983년부터는 홍수와 가뭄이 없는 살기 좋은 농촌이 될 것입니다.”

테이프커팅을 위해 자리를 옮기던 대통령은 행사석 맨 앞줄에 갓 쓴 노인들을 보고 다가가더니 “연세가 제일 높으신 분은 나오셔서 저와 함께 테이프를 끊으시죠”라고 청한다. 함덕읍에 산다는 한 노인이 테이프커팅에 참석했다. 대통령은 노인의 등을 어루만지며 안부를 묻고 배수갑문을 여는 버튼도 같이 누르자고 이끌었다.

오전 11시 40분, 대통령을 실은 헬기는 KBS 당진송신소 준공식장으로 향했다. 김재규가 모습을 보인 것은 이때였다. 육로로 천안을 거쳐 허겁지겁 달려온 것이었다. 김 실장 말에 따르면 “김재규는 그때부터 이미 화가 단단히 나 있었다”고 한다.

대통령 일행은 온천이 있는 도고호텔에서 가볍게 점심식사를 한 뒤, 오후 1시 50분 귀로(歸路)에 올랐다. 그런데 헬기 이륙을 위해 운항을 시작하는 기장에게 박 대통령이 돌연 “서울로 가기 전에 아산만 쪽으로 가서 현충사 상공을 한 바퀴 돌아주게”라고 말한다. 국사(國事)의 어려운 고비가 있을 때마다 충무공 영정에 헌화하며 무언(無言)의 대화를 나누었던 대통령의 평소 생활을 잘 알고 있던 일행들은 별다른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 자연스러운 지시라고 생각했다.

오후 2시 30분. 청와대에 도착한 박 대통령은 2호기를 타고 먼저 도착해 대기 중이던 수행 비서관들의 영접을 받고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다시 김계원 비서실장의 회고다.

‘근간의 부마사태(부마민주항쟁) 등 국내의 소요로 인해 대통령의 무겁고 어두운 표정이 오랜만에 밝은 모습이 된 것 같아 모시는 나의 입장에서도 청명한 날씨처럼 그동안의 피곤이 해소된 것 같아 기뻤다. 훗날 혹자들은 이날 행사 이동 중에 불미스러운 일종의 사건들(KBS 당진송신소 기념식이 끝나고 이륙 중 2호기 헬기가 갑작스러운 엔진 고장으로 30분 정비 끝에 먼저 청와대로 올라온 것과 점심을 위해 도고 호텔에 도착했을 때 착륙장에 인접해 있던 사슴 사육장에서 새끼 밴 사슴이 헬기 소리에 놀라 벽에 머리를 박고 죽은 일)이 이날 저녁 비극의 만찬을 예고한 것이 아닌가 했지만 (대통령을 태운) 1호기 헬기에 타고 있던 일행들은 전혀 알지 못한 내용들이었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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