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현우]신뢰 프로세스, 국내 정치에도 필요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30일 03시 00분


이현우 객원논설위원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정치경영학과 교수
이현우 객원논설위원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정치경영학과 교수
정치가 국민에게 부담이라는 것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닌 모양이다. ‘망가진 정치(Broken Politics)’라는 제목으로 2010년 3월 미국 브루킹스연구소가 발표한 글을 보면 미국인의 86%가 ‘연방정부는 망가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리더십의 취약함, 정치적 양극화의 심화, 대중의 냉소적 태도, 언론의 피상적 보도, 그리고 정치 사안에 대한 부족한 이해 등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총체적 실패가 미국이 당면한 장단기적 문제 해결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글이 발표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많은 미국정치 전문가들은 이러한 지적에 공감하고 있다. 미국의 정치 상황도 우리와 별다르지 않은 것 같다.

미국과 비교해 우리에게 더 심각한 정치문화가 있다면 정치권의 신뢰 결여라고 할 것이다. 그동안 정치적 사건이 발생하면 팩트는 차치하고 이면(裏面)의 이야기를 간파하는 것이 진실에 다가가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만연했고, 상상력이 검증된 사실을 압도했다. 듣기에 그럴듯한 음모론이 정치적 사건에 대한 인식구조를 결정짓는 것이다. 그리고 인식구조가 결정되면 그 틀에 따라 정보를 선별하거나 왜곡해 사건을 파악하고 해석하게 되는 것이다.

정치 음모론은 가깝게는 천안함 폭침 사건부터, 멀게는 6·25 북침설까지 오랫동안 우리의 인식을 지배하고 혼란에 빠뜨렸다. 무릇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존재하는 법. 민주화 이전 권위주의 정권들이 국민을 호도하기 위해 언론을 통제하고 정보를 왜곡했던 사실 때문에 아직도 정부나 권력기관의 정보에 대한 온전한 신뢰를 주지 못했다. 그리고 불행히도 그 이후 민주정부들도 국민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개방적 정부가 되지는 못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기 전 필자는 한 칼럼을 통해 새 정부가 첫 6개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쓴 적이 있다. 이전 정부들이 초기에 지지도 급락을 경험한 이유가 과잉의욕으로 설익은 정책을 시행하다 국민의 저항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아직까지 도드라진 정책을 제시하지 않은 덕분에 박 대통령은 60%가 넘는 지지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국민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신뢰의 상징성에 높은 점수를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제 신뢰의 개념에 질적 변화를 꾀할 시점이다. 앞으로 국민이 원하는 신뢰는 원칙에 바탕을 둔 신뢰를 넘어 개방성이 높은 리더에 대한 신뢰로 바뀌어야 하는 시점이 됐다.

엊그제 박 대통령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전체회의 연설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신뢰의 손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북한의 태도 변화가 박근혜 정부의 일관된 대북정책의 결과라며 남북 간 신뢰를 바탕으로 좀더 큰 협력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리고 연설 말미에 국내 정치에서도 불신과 갈등 해결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한국사회의 갈등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두 번째에 이르고 경제적 손실이 200조 원이 넘는다는 연구 결과는 우리 사회의 신뢰 수준이 얼마나 낮은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대통령이 대북정책에서 강조하는 신뢰 정착을 국내 정치에도 적용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보여줬던 인내와 포용력을 그 수준과 기대는 다르지만 야당에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둘이 만나든, 3자 혹은 5자회담이든 그러한 형식이 정치권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기회를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다. 만일 회담 형식으로 인해 논의가 부족하다면 회담 시간을 늘리거나 다른 형식으로 또 다른 만남의 기회를 만들면 되는 것이다. 어쩌면 한 번의 이벤트성 회담보다 계속되는 회담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어느 날 신문 1면에서 대통령과 야당 지도자가 국가 현안과 그 해결책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기사와 참석자들이 환하게 웃는 사진을 보는 것이다. 결산국회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현재까지 여야 영수회담이 성사되지 못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상대방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는 최소한의 신뢰와 존중마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정치적 이해타산에서 회담 성사보다 지금과 같은 정치 공동화에서 별로 손해 볼 것이 없다는 이기적인 정치인들의 계산 때문일 것이다.

제도적이고 절차적인 형식이 민주주의 수준을 결정하지 않는다. 국민의 참여와 정부의 문제 해결 능력이 관건이다. 정치지도자가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것과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논의가 중요하다는 것은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보편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현대 민주주의 유지의 필수조건이 참여 활성화와 논의를 바탕으로 하는 거버넌스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전월세 대책이 필요하다는 대통령의 한마디에 2주도 걸리지 않아 서둘러 대책을 마련하고 발표하는 식의 일방적 정책 수립은 민주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

이현우 객원논설위원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정치경영학과 교수 quick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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