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27>하이힐과 성형수술, 그리고 자존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31일 03시 00분


여성의 미모는 오래전부터 남성의 선택을 받는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해왔다. 힘을 가진 남성일수록 더 많은 여성을 거느릴 수 있었으며 미모를 갖춘 여성이 부와 권력에 다가가는 데 유리했다.

여성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남들에게서 받는 시선을 통해 확인한다. 시선을 독차지하는 데는 하이힐만한 것이 없다. 하이힐이야말로 여성으로 하여금 이목을 끌어 아름다움을 확인받기 위한 가장 탁월한 도구다.

하이힐은 유럽 절대 왕정 때의 산물이다. 고대 그리스의 연극배우들이 통굽 신발을 이용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현대적인 하이힐의 탄생은 16세기 무렵으로 알려져 있다. 베네치아의 여인들이 거리의 오물(당시는 대소변을 집 밖에 함부로 버렸다)로부터 발의 청결을 지켜내기 위해 신었다는 높은 굽의 쇼핀(Chopine)이 원형이다. 프랑스 왕정의 군주와 귀족 부인들이 이를 애용하면서 오늘과 비슷한 형태로 진화시켰다.

하지만 하이힐에는 고통이 수반된다. 오랜 시간 신을 경우 허리질환에 걸릴 위험성이 높다. 게다가 하이힐을 신는 여성들의 발은 예외 없이 굳은살과 상처투성이다. 고통을 피하는 특별한 방법이란 없다. 그냥 견뎌내는 것이다.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아름다움을 확인받고 싶은 여성의 욕망은 성형수술에서도 드러난다. 한 시장조사업체가 수도권 거주 성인 여성 11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명 중 1명꼴로 성형수술을 받았다고 인정했다. 이들은 성형수술의 이유로 ‘예뻐지고 싶어서’와 ‘자신감을 얻으려고’를 나란히 들었다.

그런데 ‘자신감을 얻으려고 성형수술을 했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미국의 역사학자 엘리자베스 하이켄은 열등감 해소로 풀이한다. 열등감을 자존심으로 치환하기 위해 여성들이 미용성형에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자존심’이란 표현을 자주 쓰며 스스로를 자존심 센 여자라고 강조할 때가 많다. 그러면서도 사소한 일에 자존심 상한다고 말한다. 강한 자존심이 어떻게 그토록 빈번하게 상할 수 있을까. 사실은 자존심이 약한 것이다. 그러니까, 세다는 자존심의 이면에는 ‘비교에 민감하며 여린 나’가 숨어 있는 셈이다.

하이힐은 20세기까지 ‘여자의 자존심’으로 불려왔다. 하이힐에 더하여 이제는 성형수술이 자존심의 기준을 더욱 높여가는 중이다. 여성들은 눈을 찢고 턱을 깎는 성형수술을 통해 ‘내 마음에 안 드는 나’를 ‘남들의 마음에 드는 나’로 바꾼다. 생살을 째고 뼈를 자르는 고통은, 남들의 인정이라는 대가에 비하면 감당할 만한 것이다.

여성들이 자존심을 위해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새로운 고통과 비용을 감수해야만 할지 지켜볼 일이다.

한상복 작가
#자존심#하이힐#성형수술#아름다움#고통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