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달라이 라마의 땅, 다람살라입니다. 히말라야가 병풍처럼 달라이 라마의 사원과 왕궁을 지키고 있습니다.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그곳은 지금도 델리에서 기차를 타고 14시간이나 가야 합니다. 그 오지, 히말라야 산자락에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건 영혼의 스승 달라이 라마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주일 전 다람살라를 찾았을 때 달라이 라마는 거기 없었습니다. 사람들의 말이 무문관에 들어 계시다고 했습니다. 왕이 무문관에 들어 수행하고 있다는 말이 얼마나 낯설고 신선했는지요. 나는 달라이 라마가 계시지 않는 달라이 라마의 사원, 남걀 사원에서 매일 코라를 돌고 돌고 또 돌았습니다.
코라는 순례길을 돌며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염불을 하고 누군가는 천천히 돌기만 합니다. 누군가는 오체투지를 합니다. 저들은 도대체 무엇을 빌고 있는 것일까요? 그 모두를 단순히 기복신앙이라 무시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의 태도에서 안정감과 행복감을 봤기 때문입니다. 어리거나 나이 들었거나, 여자거나 남자거나, 스님이거나 일반인이거나, 옷을 잘 입었거나 누더기를 걸쳤거나 거기에선 차별이 없었습니다. 달라이 라마를 삶의 자긍심으로 삼고 희망으로 삼고 등불로 삼고 있는 그들에게 라마의 사원에서 코라를 도는 그 행위는 거듭거듭 삶을 정화하는 행복한 일상입니다.
처음에 나는 이 사원과 왕궁을 보고 너무나 놀랐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달라이 라마의 사원이고 왕궁인데, 시멘트 바닥에, 1980년대 우리 산촌의 초등학교 건물 같은 그 사원의 겉모습은 소박하다 못해 초라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사원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매일매일 신선합니다.
하루는 오전 6시에 코라를 도는데, 내 앞에서 코라를 돌던 나이 드신 스님이 갑자기 멈춰 서더니 바닥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자연스레 내 시선도 따라갑니다. 비를 피해 사원 안으로 기어든 벌레 한 마리가 시멘트 바닥에서 길을 잃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자신의 염주로 벌레에게 울타리를 만들어 주더니 손가락으로 벌레를 들어 큰 나무 아래 폭신한 흙 위에 벌레를 내려놓습니다.
보이시나요? 분위기가. 거기 작은 서점 입구에 적혀 있는 달라이 라마의 말씀 또한 그대로 그들의 일상입니다. ‘우리는 웅장한 사원이나 복잡한 철학이 필요치 않습니다. 우리의 머리와 심장이 우리의 사원이고, 온유함이 우리의 철학입니다.’
8월에 다람살라는 우기입니다. 매일 매일 비가 내립니다. 천둥번개가 치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퍼붓는 장대비부터 안개비까지, 도무지 맑은 날씨를 보지 못했습니다. 날이 맑으면 히말라야 설산의 정상까지 그대로 보인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금요일, 새벽부터 날이 청명합니다. 사람들이 말하길, 달라이 라마가 무문관 수행을 마치고 왕궁으로 돌아오는 날이라고 합니다. 그날 처음으로 히말라야 설산이 햇빛에 빛나는데, 세상에, 그 아름다운 광경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야말로 거기가 세상의 중심입니다. 길거리에는 사람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지혜로운 왕을 환영하며 합장을 하고, 그들을 향한 달라이 라마의 미소가 사람들의 미소로 번져나갑니다.
그 날씨는 우연이었겠지요? 어쨌든 그날이 내가 보름 동안 다람살라에서 본 맑고 청명한 나절이었습니다. 나는 생각합니다. 히말라야가 달라이 라마의 무문관 수행을 기뻐하며 달라이 라마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달라이 라마를 기다린 것이라고. 그곳은 아직도 상징과 은유가 살아 움직이는 신화의 나라니까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