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바닥난 무상보육, 정부와 서울시 모두의 책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3일 03시 00분


이번 달부터 서울시 25개 자치구 가운데 21개 구의 무상보육 예산이 바닥난다. 이들 구는 0∼4세 영유아가 있는 가정과 어린이집에 양육수당과 보육료를 주지 못할 개연성이 크다. 강남 서초 종로 중구는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지만 이곳 역시 1, 2개월이면 예산이 고갈된다.

정부와 서울시는 서로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정부는 서울시가 2100여억 원의 추경을 편성하면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정부 지원금 1355억 원을 당장 주겠다고 한다. 서울시는 경기침체로 올해 세수가 7500억 원이나 줄어 추경을 편성 못하니 정부가 먼저 지원금을 지급하라며 맞서고 있다.

무상보육 문제는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쟁(政爭)으로 변질하고 있다. 어제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재정자립도 30%대인 경북도와 전남도는 추경으로 무상보육을 차질 없이 추진 중”이라며 “재정자립도 1위 서울시는 박원순 시장의 몽니로 9월 보육대란 현실화가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반면 서울시는 지하철과 버스에 “대통령님! 무상보육을 쭉 이어갈 수 있도록 약속을 지켜주십시오”라는 광고를 붙여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무상보육 대상은 올해 크게 늘어났다. 작년까지 소득 하위 15∼70%에게만 양육수당과 보육료를 지급했으나 올해부터 전 계층으로 확대했다. 지난해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포퓰리즘 경쟁 때문이다. 서울시의 지원 대상은 20만 명에서 40만 명으로 배나 늘었다. 정부 여당은 “서울시가 상황을 알면서도 올해 예산에 반영하지 않고 방치했다”고 비난한다. 서울시는 “국고 지원을 20%에서 40%로 늘리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부터 통과시키라”고 맞선다. 정부와 서울시는 어린이를 볼모로 한 정쟁을 중단하고 해법부터 논의해야 한다.

어렵사리 이번 고비를 넘긴다 해도 이 제도가 지속가능할지 의문이다. 경기침체로 세수가 더 줄어들면 똑같은 싸움이 반복될 것이다. 올해 말까지 안정적인 재원 확보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무상보육제도를 원점에서 재설계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100% 무상복지는 장기과제로 넘기고 살림이 어려운 사람부터 제대로 양육수당을 받을 수 있도록 물러설 일이다.
#무상보육 예산#양육수당#보육료#정부#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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