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브러햄 링컨이 깊은 우울증을 앓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링컨이 우울할 이유는 많았다. 어릴 때 모친이 세상을 떠났고 정규 학교는 1년밖에 못 다닐 만큼 가난하게 살았다. 누나도 젊은 나이에 죽었다. 결혼을 약속했던 여자친구도 열병으로 유명을 달리했다고 한다.
자식들도 불행했다. 링컨의 네 아들 중에 18세를 넘겨 산 아이는 장남 로버트 링컨 한 명이었다. 가장 자신을 닮아 아끼던 3남은 백악관에서 영면했다. 링컨이 남긴 편지 중에 남북전쟁 때 다섯 아들을 모두 잃은 한 부인에게 쓴 것이 있는데 편지를 읽다 보면 자신의 경험이 녹아 있어서인지 자식 잃은 슬픔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몇몇 정신의학자는 링컨 우울증의 원인을 다른 데서 추측하기도 한다. 바로 염증성 신체 질환인 매독 때문이라는 것이다. 1835년 혹은 1836년에 그는 친구 허돈에게 자신이 매독에 걸렸다고 고백했다는 것이다. 링컨을 미워하던 사람들이 만들어 낸 소문일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꽤 여러 가지 정황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의 아내인 메리 토드가 나중에 이상행동을 보여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결국 뇌척수염을 앓다가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매독을 오랫동안 치료하지 않았을 때 나타나는 뇌매독 증상의 하나이다. 4명의 아들 중에 3명이 성인이 되기 전에 사망한 것도 모태 감염이 되었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할 수도 있다.
당시는 페니실린이 발견되기 전이었으므로 뾰족한 치료법이 없었을 것이다. 몇몇 자료는 링컨이 수은을 일종의 치료제로 먹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는데, 수은은 그 자체로 뇌 독성이 있어 우울증, 정신착란 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매독 자체도 뇌수막염을 일으키기도 하고, 꼭 뇌수막염이 아니더라도 염증으로 인해 전신에 분비되는 사이토카인 같은 물질이 우울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링컨의 우울증이 과연 신체질환 때문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뇌가 몸을 움직이게 하고 관장하는 것만큼 몸도 뇌의 건강에, 마음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래서 신체질환에 자주 동반되는 우울증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면 당뇨 환자들에게 우울증 유병률이 높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려졌다. 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당뇨를 관리하기 위해 철저히 식이요법을 하고, 일정 시간에 투약해야 하는 등의 심리적 스트레스 때문에 우울증이 많을 거라고 여겨졌다. 그런데 최근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당뇨로 인한 뇌혈관 합병증, 고혈당이나 저혈당 쇼크 등이 뇌에 미세한 이상을 일으켜 우울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몇 년 전부터 우리 연구팀은 1형 소아당뇨 환자들의 뇌 영상을 분석했다. 고혈당이 뇌 대사물질의 미세 이상을 일으키고, 이는 전전두엽 뇌회질 두께 등 구조적 이상도 유도하여 우울증은 물론이고 미세인지 기능을 저하시킨다는 결과를 보고하였다. 현재는 2형 성인당뇨에 대해서도 연구를 확장해 진행하고 있다. 즉, 당뇨에 걸렸을 때 혈당 조절을 잘하고 치료를 잘 받는 것은 신장, 다리, 눈에 생기는 합병증 등 ‘몸’의 합병증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마음’의 합병증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는 셈이다.
당뇨환자를 둔 가족들이 환자를 향해 “당뇨는 운동을 해야 하는데 왜 움직이지 않느냐”고 비난하는 경우가 있는데 움직이지 않는다고 비난하기보다 혹시 우울증이 없는지 살펴보는 게 좋다. 만약 우울증이 동반된 것 같다면 주치의인 내과의와 상의하고 병력에 대한 자세한 의뢰서를 받아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치료받을 것을 권한다.
우울증이 치료되면 운동도 하고, 약도 더 잘 챙겨 먹는 등 자기관리를 잘해 신체적으로도 더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당뇨를 예로 들었지만 에이즈 등의 감염성 질환, 류머티스성 질환 등의 염증성 질환, 암 등도 심리적 스트레스로 인한 범위를 넘어 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러한 뇌과학 연구 결과들이 우울증 치료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철학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데카르트 때만 하더라도 몸과 마음은 서로에게서 독립된 실체라고 생각했다. 즉, 마음은 몸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움직이지만 몸은 마음이 시키는 바에 따라 기계적으로 따른다고 생각했다.
신경과학의 발전은 이러한 이분법적인 마음과 몸에 대한 이해를 뛰어넘게 하였다. 영국 킹스턴대 철학과 교수인 카트린 말라부는 데카르트로부터 최근의 신경과학적 발견인 심리적 외상, 뇌가소성, 후성유전학 등을 잇는 철학서로 유명하다. 과거 한 뿌리에서 출발한 철학과 과학이 한때는 별개의 학문으로 생각되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도 철학과 과학처럼, 아니 그보다 더욱 긴밀하고 유기적인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몸과 마음 중 어느 한쪽도 소홀히 하지 않고 아끼고 가꾸는 것이 결국 나의 행복, 내 가족의 행복을 지키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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