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영란]누가 ‘부패 카르텔’ 깨기를 두려워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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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대법관 시절 어느 학교에 강연 초대를 받아 갔다. 미리 초대자와 차 한잔을 나누었는데 그분이 집에 가서 읽어 보라면서 편지 봉투를 건네었다. 강연을 마치고 돌아와 열어 보니 뜻밖에도 당시 내가 속한 재판부에서 재판 중이던 사건에 관하여 ‘부디 피고인을 살려 달라’는 내용으로 청탁하는 편지였다.

내가 주심대법관은 아니었지만 4인의 재판부는 만장일치로 피고인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그 피고인 측은 남편인 강지원 변호사에게도 청탁해 왔다고 했다. 남편에게 거액의 돈이 든 쇼핑백까지 들고 찾아왔다는 것이다. 남편이 거절하자 다른 변호사라도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여 소개해 주었다고 하였다. 만일 그 사건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결되었더라면 그들은 어떻게 생각하였을까. 청탁을 받고 사건을 봐주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지난달 초 모 신문에 남편이 그 사건을 위임장도 없이 수임하였으며 김영란 대법관은 과연 그걸 몰랐을까 운운하는 황당한 (기자)칼럼이 게재되어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 보도를 신청해 두었다. 대법관을 배우자로 둔 변호사가 배우자가 소속된 재판부의 사건을 수임한다는 발상 자체가 어이없다. 이처럼 청탁이란 판결이나 나아가서 공직자의 법집행의 신뢰를 저 바닥으로 떨어뜨린다. 공직자나 그 가족들이 청탁에 시달리다가 이를 배척하였음에도 결과에 관계없이 이런 오해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도 기가 찰 일이다.

30여 년의 판사직을 퇴임한 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기로 하고 대학 강의를 준비하던 중 뜻하지 않게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게 되자, 국민권익위원회의 핵심 업무 중 하나인 부패 방지 업무에 대한 고민이 크게 다가왔다. 국제투명성기구의 반부패 순위는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특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국제투명성기구가 순위를 평가하는 데 사용하는 원천지수의 상당 부분은 대상 국가에서 행해지는 설문조사가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부패 순위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것은 결국 우리나라에서 행해지는 설문조사 결과가 별로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 국민은 공공부문의 정책 집행이나 민간 분야의 계약 성립 등이 뇌물을 준다든지 연줄이 있다든지 하는 경우에 더 잘 성사된다고 믿는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공정하게 집행하여도 국민들은 그 배후에 뇌물이라든지 연줄이라는 부패 커넥션이 도사리고 있다고 의심한다. 혈연, 지연, 학연 등의 연고관계는 물론이고 그 이외의 사회관계에서 형성된 각종 연줄이 공고한 ‘부패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어 불신의 늪이 워낙 깊다.

반부패기구의 기관장으로서 나는 어떻게 하면 이같이 공고한 ‘부패 카르텔’을 깰 것인가 고민하였다. 국민의 부패에 대한 감수성은 선진국 수준인데 뇌물수수죄 등 종래의 형사법적 차원의 대응만으로는 효과를 거둘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추진한 법안이 ‘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이다. 그런데 이런 ‘부패 카르텔’을 깨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떤 사람들일까. 가만히 들여다보면 보일지 모른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부패#뇌물#청탁#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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