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승건]‘제2 류현진’을 꿈꾼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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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몇 년 전 고교야구 감독이 들려준 얘기다.

할머니의 뒷바라지 속에 야구를 하던 중학생이 있었다. 가능성이 보여 장학금을 주기로 하고 자신의 학교에 입학을 시켰다. 어려운 형편을 알기에 사비로 용돈도 줘가며 훈련을 시켰고 그 학생의 기량은 감독의 기대 이상으로 발전했다. 학생이 고교 2학년이던 어느 날 아버지라고 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아들이 나온 신문 기사를 봤다고 했다. 어린 자식을 버린 이후 돌보지도 않던 그가 원한 것은 아들의 미국 진출. 감독은 만류했지만 100만 달러 이상의 계약금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주워들은 아버지는 결국 아들을 미국으로 보냈다. 이후로는 그전처럼 연락도 잘 하지 않는다. 아들은 아직 마이너리그를 떠돌고 있다. 기량을 더 쌓으며 국내에서 뛰었다면 이미 스타가 됐을 선수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미국행 비행기를 타는 고교야구 선수들이 급증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자료에 따르면 2008년 6명, 2009년에 9명이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중 누구도 아직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지 못했다. 2002년부터 급감했던 미국 진출 고교 선수가 당시 크게 늘어난 것은 브로커들이 활개를 쳤기 때문이다. 그들은 눈앞의 돈(계약금)을 미끼로 부모를 유혹하고 자신도 이익을 챙겼다. 이에 대해 많은 야구인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국내 프로야구에 거물급 신인이 줄어드는 문제를 떠나 어린 선수들의 미래가 걱정된다는 것이었다. 말도 안 통하고 친구도 없어 생활 자체가 힘든 데다 국내에서와 달리 집중적이고 체계적인 훈련을 받지 못해 실력이 늘기 어렵다는 게 그 근거였다.

다행히 2009년을 정점으로 미국에 진출하는 고교 선수들은 급감했다. 2010년과 2011년에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한 선수는 각각 한 명뿐이고 지난해에는 한 명도 없다. 국내 프로야구를 거치지 않고 해외에 진출한 선수들이 복귀할 때 선수 및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제한한 야구규약과 ‘어릴 때 미국에 가서 성공한 선수가 없다’는 학습효과가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 LA 다저스 류현진이 맹활약하는 것을 보면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겠다는 선수와 부모가 다시 많아졌다는 게 고교야구 지도자들의 얘기다. 앞에서 얘기했던 그런 부모가 또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그들이 우상으로 여기는 류현진은 최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나처럼 국내 프로야구를 7, 8년 충분히 경험한 뒤 진출하는 게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어린 나이에 몸도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에 오면 (한국과 다른) 개인적인 야구 스타일에 적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미국에 간다고 메이저리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식을 ‘제2의 류현진’으로 만들고 싶은 부모라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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