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간 열리는 정기국회는 입법부의 ‘한 해 농사’다. 국정감사를 통해 정부의 1년간 정책 성과를 점검하고 내년 예산안을 만든다. 2일 정기국회가 시작됐지만 여야는 정쟁만 벌이면서 아직 아무런 일정도 잡지 못하고 있다. 의원들은 당연히 국회 정상화를 위해 동분서주해야 하지만 요즘 국회 의원회관은 엉뚱하게 의원들의 출판기념회로 분주하다.
출판기념회는 의원들에게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참석자들은 보통 1만∼2만 원짜리 책 한 권을 받고 5만 원 이상이 든 봉투를 낸다. 사실상 편법 후원금이다. 출판기념회의 수입은 정치자금법상 보고 의무도 없다. 한 사람이 뇌물이나 다름없는 수백만, 수천만 원을 낸들 문제 삼기 어렵다. 그물이 촘촘한 정치자금법의 유일한 ‘구멍’이라 할 수 있다. 국감과 예산 심의를 앞둔 요즘은 출판기념회의 ‘대목’이다. 의원들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상임위 소속 기관들의 처지에서 몇십만, 몇백만 원이 아깝겠는가.
그제 열린 새누리당 이군현 의원의 출판기념회에는 1000여 명이 몰렸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서남수 교육부 장관,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직접 참석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와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등도 화환을 보냈다. 이 의원은 올해 예산 심의를 총괄하는 예산결산특위 위원장이다. 예결특위는 부처 예산을 임의로 삭감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만큼 관가(官街)에서는 ‘눈도장 찍기’에 바빴을 것이다.
어제 열린 새누리당 김정훈 의원의 출판기념회도 성황이었다. 김 의원은 정무위원장이다. 정무위는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을 비롯해 기업과 금융권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현안들을 다룬다. 오늘은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인 민주당 신학용 의원이 출판기념회를 연다. 교문위는 산하기관이 많은 위원회 중 하나다.
올해 최대 화두 중 하나는 갑을(甲乙) 관계의 불공정을 바로잡는 것이다. 이 흐름을 주도한 곳이 바로 국회다. 하지만 때마다 되풀이되는 실세 위원장들의 ‘수금(收金)’ 행태는 언제쯤 바뀔 것인가. 이참에 출판기념회 수입에 대한 회계보고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합법을 가장해 정치인들이 한몫 챙기려는 출판기념회를 더는 방치해선 안 된다. 여야는 지난 대선 때 앞다퉈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무엇을 시원하게 내려놓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