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5, 6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렸다.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한국 박근혜 대통령은 정식 정상회담 대신 서서 인사하는 짧은 접촉을 가졌다. 각국 정상이 모인 장소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예의만 보인 것이다.
아베 총리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단념했지만 8월 15일 전국 전몰자 추도식 연설에서 아시아 여러 나라에 대한 가해와 반성을 언급하지 않았다. 또 자신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포함해 가능한 한 ‘애매하게’ 말하고 역사논쟁을 피하는 것을 기본 방침으로 하고 있다.
그 때문에 한국 정부는 아베 정권이 무라야마 담화를 수정하지 않을까 의심하고 있다. 또 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한 후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면 박 대통령이 큰 타격을 입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현재 한일 간에는 경제 마찰 등 실질적인 이해 대립이 드러나지 않았고 위안부 문제 등 구체적인 문제가 불거지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국 간 역사 인식 논쟁’이 가열돼 양국의 민족주의가 높아지고 있다.
필자는 ‘2015년 문제’로 인해 ‘인식’ 논쟁이 구조화해 더 심각해지는 상황을 우려한다. 정치 지도자 레벨의 신뢰가 무너지면 관료 레벨, 더 나아가 국민 레벨까지 신뢰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2015년 문제’란 2015년 6월에 한일 양국이 평온하게 국교 정상화, 즉 한일기본조약과 부속협정 체결 50주년을 맞아 그것을 축하할 수 있는지를 의미한다.
역사 마찰이 계속되면 한국 내 야당세력과 민족주의 지식인들이 1965년 계엄령 아래에서 체결된 ‘굴욕’ 조약과 부속협정에 이의를 제기하고 그 개정을 국내 정치의 쟁점으로 삼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한일 조약을 맺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서 박근혜 대통령은 그러한 비판에 취약하다.
한편 2015년 8월 일본은 전쟁 종결 70주년을 맞는다. 무라야마 총리의 전후 50주년 담화와 그것을 계승한 고이즈미 총리의 전후 60주년 담화와 비교하며 2015년에 나올 ‘아베 담화’의 내용에 대해 일본 국내 논의가 격화될 것 같다. 그 이전에 역사 인식 논쟁이 끝나지 않으면 한일 양국의 국내 문제까지 분명히 연계될 것이다.
2년 후 문제를 지금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한일 역사 마찰을 구조화하고 있는 것은 ‘2015년 문제’뿐만이 아니다. 그 이전에 한국인 위안부와 징용노동자 전후배상청구에 대한 한국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판결도 새롭게 구조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오해를 막기 위해 첨언하면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은 판결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논리 구성에 대한 것이다. 예를 들어 징용노동자의 손해배상소송에서 한국 대법원은 한일 간 ‘식민 지배의 합법성’ 등에 대해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근거로 ‘한일 청구권협정을 맺었더라도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보호조약과 합병조약 등 옛 조약의 ‘합법성’은 한일 교섭 당시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었다. 거기에 대해 한일기본조약은 ‘이미 무효’라고 표현하고 그것을 토대로 해 청구권협정도 체결됐다. 양측은 그것을 형편에 맞게 해석해 왔다.
만약 그러한 외교적 해석이 문제시된다면 1965년 이후 한일이 맺은 조약들에 법률적인 물음표가 붙어 버린다. 그러한 구조적 ‘결함’을 안고 있는 한일기본조약이 2년 후 체결 50주년을 맞이한다. 한일 정부와 국민은 지금부터 신중하게, 또 사려 깊게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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