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국회가 시작된 지 1주일이 지났다. 국회가 그동안 한 일이라고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처리가 유일하다. 당시 여야가 모처럼 뜻을 모아 대다수 국민의 박수를 받았지만 이후 국회정상화 논의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진상 규명과 국정원 개혁을 내세워 국회 파행에 앞장서고 있다. 야당과 청와대 사이에 끼인 여당은 존재감이 없다.
정치 실종 국면에서 이치에 맞지 않는 정치인의 말은 국민을 더 짜증나게 한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어제 최고위원회의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박근혜 대통령을 비교했다. 그는 “메르켈 총리가 나치 만행에 거듭 사죄하는 유일한 이유는 그가 독일의 국가수반이기 때문”이라며 “‘나는 직접 책임질 일이 없으니 사과할 것도 없다’고 메르켈 총리는 말하지 않는다. 박 대통령도 참고할 부분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제 국립4·19민주묘지에서는 “이석기 의원이 헌정 파괴를 모의한 것이 큰 죄라면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개입해서 헌정 파괴를 실행한 것은 더 큰 죄”라고 말했다.
600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을 대학살한 나치와 민감한 대선 시기 부적절한 댓글을 달아 기소된 국정원의 범죄가 같은 수준이라는 말인가. 베스트셀러 작가 출신답지 않은 부적절한 비유다. 국정원의 댓글 작업이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치려 조직적으로 행한 범죄인지를 두고 재판이 진행 중인 만큼 결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국정원의 정치 개입이 확인되면 마땅히 단죄해야 하지만 대한민국 자체를 부정하는 세력보다 국정원이 더 나쁘다고 한다면 동의할 국민이 얼마나 될까.
김 대표는 5월 4일 대표 취임 이후 의원 워크숍에서 ‘절망이 기교를 낳고 기교는 절망을 낳는다’는 소설가 이상의 말을 인용했다. 겉모습만 바꾸는 기교가 아니라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김 대표의 강경 발언이야말로 어설픈 기교가 아닌지 자문해 보길 바란다.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공격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민주당이 장외투쟁에 나선 지 오늘로 41일째, 김 대표가 서울광장 천막당사에서 노숙한 지 14일째다. 국회가 겉돌수록 손해를 보는 쪽은 야당이다. 정부 정책 비판도, 예산안 검증도 국회에 참여해야만 가능하다. 정치권은 상대를 존중하며 출구를 열어주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