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적 맹목적이며 윤리에서도 자유로운 그것?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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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옥의 가슴속 글과 그림]

카라바조, 모든 것을 이기는 사랑, 1601년경.
카라바조, 모든 것을 이기는 사랑, 1601년경.
그림 속의 소년이 관객을 향해 눈웃음을 짓고 있다.

아이의 순수함과 성인의 섹시함을 함께 지닌 이 소년은 로마 신화에 나오는 사랑의 신(神) 큐피드(아모르)다. 17세기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는 커다란 날개와 오른손에 쥔 두 자루의 화살로 소년의 정체가 큐피드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소년의 발밑에는 건축용 T자, 컴퍼스, 바이올린, 현금, 악보, 갑옷 등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과학도구는 냉철한 이성, 갑옷은 육체적 힘, 바이올린과 현금, 악보는 교양을 상징한다. 즉, 사랑이 인간에게 필요한 기술문명, 군사력, 예술보다 강하다는 뜻이다.

카라바조는 ‘사랑은 모든 것을 정복한다’라는 메시지를 강조하는 도구로 자신이 개발한 명암법을 활용했다. 소년의 땀에 젖은 머리카락, 배의 주름살, 허벅지를 애무하는 날개의 감촉, 사랑의 승리(victory)를 의미하는 V자 모양으로 벌린 허벅지, 노출시킨 성기 등 강조할 부분에는 강한 조명을 비추고 나머지는 어둠 속에 숨겼다. 극적인 명암대조법으로 관능적이며 촉각적인 사랑의 속성을 생생하게 보여준 것이다.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대서사시 ‘아이네이스’ 제4권에는 사랑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실감할 수 있는 구절이 나온다.

‘불행한 디도가 사랑의 불길에 휩싸여 도시를 미친 듯이 쏘다니는 모습은 마치 화살 맞은 암사슴과 같았다…. 그녀는 아이네이아스와 헤어지고 별들이 잠자리를 청하면 빈집에서 홀로 슬퍼하며 그가 머물다 간 긴 의자에 쓰러져 누웠다. 그는 그곳에 없건만 그녀에게는 그가 보이고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카라바조가 왜 큐피드를 어린 소년의 모습으로 표현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사랑은 아이처럼 충동적이고 맹목적이며 윤리도덕에서도 자유롭다고 말하기 위해서다.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 협회장
#큐피드#사랑#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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