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손택균]“이랏샤이마세!”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0일 03시 00분


손택균 문화부 기자
손택균 문화부 기자
“이랏샤이마세!”

서울 홍익대 근처나 이태원 일대 일본식 술집 문을 열면 우렁찬 일본말 인사가 들린다. 웃으며 반겨주니 고맙다. 그런데 며칠 전 동행한 학교 선배가 말했다. “사장도 요리사도 종업원도 한국 사람들 같은데, 꼭 일본말로 인사해야 분위기가 사는 걸까? 베테랑 일본인 요리사가 우리말로 느릿느릿 인사를 건네 온다면 어떤 느낌일 것 같아?”

듣고 나니 달포 전 이태원 칵테일 바에서 목격한 일이 생각났다. 친구의 추천으로 찾아간, 외국인 사장이 운영하는 가게. 차림표는 영어와 한글을 병기했지만 종업원들은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듯했다. 파티가 있었는지 외국인 손님들이 왁자하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한국인 손님은 창가 근처 20대로 보이는 남녀 셋뿐이었다.

앉은 지 10분쯤 지났을까. 종업원이 창가 자리로 다가가더니 “소란스러우니 주의해 달라”고 이야기했다. 무안해하던 그들은 잠시 뒤 한 번 더 경고를 받고 쫓겨나듯 자리를 비웠다. 왕왕 울려대던 영어 대화 속에 간간이 끼어들던 한국말이 사라졌다. 종업원은 그 막간의 한국말이 거슬렸던 걸까. 한 잔 더 할 생각을 접고 계산을 한 뒤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지난주 강남 단골 술집 옆자리에는 한국어와 영어를 번갈아 쓰는 30대 여성이 앉아 있었다. 유창함과 과장스러움의 어딘가에 있는 듯한 혼합어가 쩌렁쩌렁 울렸다. 이제 이 사람 논문 주제까지 들어줘야겠구나 싶을 즈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다음 날 가게 사장이 휴대전화 문자를 보냈다. “미안. 어제 그 영어 아가씨, 여러 사람 쫓아냈다.”

일요일 오후. 약속 장소 근처 서점에 잠깐 들러 잡지를 구경했다. 뒤에서 한 여자아이와 어머니의 대화가 들렸다. “마미”라 불린 어머니는 딸의 야무진 영어에 답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공공장소에 적합한 음량 조절에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듯했다. 소녀는 장차 어쩌면 유창한 외국어 구사 능력을 갖춘 ‘우월한 인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외국어가 한국어보다 우월하다’는 착각에 빠질 가능성도 커 보였다.

“어서 오십시오.”

최근 우연히 알게 된 초밥가게. 요리사의 설명은 “오도로입니다” 대신 “참치 뱃살입니다”였고 “시메사바입니다” 대신 “고등어초절임입니다”였다. 도쿄에 머물던 친구가 데리고 간 집만큼 푸짐하고 깔끔했다. 배웅하던 요리사가 말했다. “허기 때문에 맛있게 드셨을 거예요. 다음에는 기억과 기대를 버리고 오시는 게 좋습니다.” 당연히, 한국말이었다.

손택균 문화부 기자 sohn@donga.com
#인사#이랏샤이마세#외국인 손님#한국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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