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 과학 부처를 합치는 전례 없는 정부조직개편이 2008년에 이뤄지면서 교육과학기술부의 초대 수장에 임명된 김도연 당시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세계적인 공학자, 교과부 장관, 국가과학기술위원장이라는 이력을 보면 뼛속까지 이과생일 듯하다.
서울대 법대 재학 중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불과 48세에 대법관이 된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 여성 최초 대법관인 그는 고교 시절 백일장에서 상을 탄 적도 있다니 전형적인 문과생 같다.
사실은 아니다. 1970년대 김도연 학생은 경기고 문과를, 김영란 학생은 경기여고 이과를 졸업했다. 그로부터 약 40년이 흐른 지금, 교육부가 대입 간소화 방안을 발표한 이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문이과를 통합하는 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다.
7차 교육과정 이후 이론적으로는 고교에서 문과와 이과의 구분이 사라졌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학 입시에서 문이과 장벽이 엄격하게 남아 있다. 고교 1학년이 끝나갈 무렵이면 아이들은 본인의 적성이나 진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한 채 양자택일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평생의 진로를 결정할 문제다.
앞서 언급한 김도연 김영란, 두 명사도 고1 때 양자택일을 했던 것은 지금과 다를 바 없다. 차이점이라면 당시 학생은 고교 3년을 마친 뒤 다른 계열의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던 반면 요즘 학생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물론 1970년대에도 고난도 본고사가 있어서 문과생이 이공대에 진학하려면 이과 수학을 공부해야 했다. 이 부분만 극복하면 예비고사나 내신 같은 걸림돌은 없었다. 지금은 수시모집에서는 수능 최저학력기준과 학생부 지정 과목이, 정시모집에서는 수능 응시영역이 문과생의 이공대 진학을 철저히 가로막는다. 이과생의 인문대 진학도 여의치는 않다.
두 명사의 사례는 대학 입시의 문이과 장벽이 융합형 인재의 싹을 자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수학과 물리를 좋아했던 김영란 전 위원장과 운동과 문학을 좋아했던 김도연 전 장관이 각자의 분야에서 정상에 오른 데에는 문이과를 아우르는 통섭적 사고력이 한몫했을 것이다.
‘최악의 입시 제도라도 안 바꾸는 게 최선’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입 제도 개편은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교육이 늘어난다는 이유만으로 문이과 장벽을 고집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수능에서 문이과를 통합하지 않더라도 해법은 있다. 대학이 바뀌면 된다. 서울대가 2014학년도 입시에서 일부 이공계 학과에 문과생의 지원 길을 터놓았음을 다른 대학이 주시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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