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소에 쓰이는 부품의 납품을 담당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의 송모 부장은 사과상자에 담긴 빳빳한 5만 원 현금다발 수억 원을 집에 감춰 놓았다가 발각됐다. 원전용 비상 디젤발전기와 변압기의 납품계약을 해주는 대가로 현대중공업으로부터 받은 뇌물 17억 원의 일부다.
부산지검 동부지청 원전비리수사단이 어제 발표한 중간수사 결과는 송 부장뿐 아니라 납품업체-검증업체-승인기관(한국전력기술)-운영기관(한수원)-정치권의 부패구조가 얼마나 고질적이고 구조적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김종신 전 한수원 사장은 납품 청탁뿐 아니라 인사 청탁에 뇌물까지 받고, 이명박 정부에서 ‘왕차관’으로 불렸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에게는 “잘 봐 달라”며 700만 원을 바쳤다. 일선 직원부터 정부 실세까지 이렇게 썩었는데도 원전이 그런대로 운영됐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원전비리수사단은 “47개 부품의 위·변조와 관련한 안전성을 점검한 결과 대부분의 원전에서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이 없었다”며 “제어케이블 등 안전에 영향이 있는 부품은 성능 재시험 중”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신고리 1, 2호기와 신월성 1, 2호기 등 4기의 원전 재가동이 예상보다 늦춰지면서 온 국민이 더운 여름에 이어 추운 겨울을 보낼 판이다.
이번에 드러난 원전 비리는 작년 9월 외부 제보가 없었다면 ‘짝퉁 부품’이 설치됐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몰랐을 것이다. 정부는 원전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온통 뇌물 고리로 얽혀 있는 ‘원전 마피아’ 조직을 근본적으로 수술해야 한다.
국회는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 충돌 방지법(김영란법)’을 강화해 통과시켜야 한다. 올해 7월 국무회의를 통과한 이 법의 수정안은 공직자가 직무 관련성 없이 부정한 돈을 받을 경우 과태료만 내면 신분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서 원안에서 후퇴했다. 정부는 온갖 부정부패의 ‘전범’ 같은 이번 원전 비리를 부패 척결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