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 논란이 불거지면서 복지가 다시 화두가 됐다. 늘어나는 복지비용을 어디서 끌어올 것인가가 핵심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증세 없는 복지는 없다. 증세를 어디서 할 것인가. 당연히 부자와 대기업으로부터다. 하지만 이들에게 세 부담을 늘리면 경제가 침체된다. 어떻게 할 것인가. ‘복지 사회’를 내건 박근혜 정부는 목표만 있을 뿐 이를 위한 로드맵이 없다. 해법은 바로 ‘노사정(勞使政)’ 대타협이다.
복지의 롤 모델로 꼽히는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 등은 모두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복지 재원을 마련했다. 하루아침에 이뤄진 건 아니다. 수십 년간 토론과 대화를 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쳤다.
얼마 전 방문했던 스웨덴에서 복지사회를 이루기 위해 그들이 기울인 노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20세기 초반 스웨덴은 걸핏하면 파업이 일어나 ‘파업과 보이콧, 폐업의 땅’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1931년 총파업 때는 군(軍)이 시위대에 발포해 노동자들이 사망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사회적 위기감이 퍼졌다. ‘함께 망하기보다 같이 사는 길을 택하자!’ 정치권에서는 좌우연정(1936∼1939년)이 시작됐고 의회에서는 밤마다 끝장 토론이 이어졌다. 결국 노조는 파업을 자제하고 사측은 해고를 자제하는 살트셰바덴 협약(1938년)을 맺었다.
이후 스웨덴 노동쟁의 건수는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다. 2차 대전 와중에도 승승장구했으나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또 다른 위기에 부닥친다. 이번엔 노노(勞勞) 갈등이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에 임금 격차가 커지면서 부자 노동자와 가난한 노동자의 갈등이 극에 달했다. 스웨덴은 다시 격랑에 휩쓸렸지만 다시 한 번 1951년 노동자단체와 경영자단체 간에 대타협을 이뤄낸다. 대기업은 임금 인상을 억제하고 중소기업은 임금을 높여 격차를 줄이고,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같은 일을 하면 임금도 같게 하는 이른바 ‘노노(勞勞)연대 임금’ 협약(렌-메이드네르 협약)이었다.
이 협약은 성장과 복지재원의 동력이 됐다. 대기업은 인건비를 줄여 생긴 여유 자금을 공장 증설과 연구개발에 투자했고 높아진 임금을 감당하지 못한, 경쟁력 떨어지는 중소기업은 퇴출되는 자연스러운 구조조정이 이뤄지면서 경제체질이 강화됐다. 경제성장으로 과실이 많아진 대기업들은 1970년대 후반 직원 한 명당 임금의 31%에 해당하는 액수를 무조건 정부에 내는 ‘피고용세’ 정책에 합의하면서 복지의 새로운 재원을 추가했다.
한국을 돌아보자. 봉급생활자는 복지 재원을 위한 봉이나 마찬가지다. 기업에 대해선 국세청을 앞세운 세무조사로 재원을 마련하려는 행정편의주의가 판친다. 복지의 개념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없다 보니 현대자동차 노조에서 보듯 정규직들은 비정규직이 저임금에 허덕이건 말건 파업을 불사한다. 정규직이라 하더라도 노후 사회적 안전망이 부실하니 은퇴 후 생활비가 없으면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불안이 커 모든 것을 임금으로 충당하려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경제민주화도, 복지도 물 건너간다.
스웨덴 상생정치의 결정적 배경엔 이 나라 영웅인 타게 에를란데르 사민당 총재가 있다. 그는 총리 재임기간(1946∼1969) 동안 매주 목요일을 노조와 재계가 만나는 날로 정하고 꾸준히 대화를 주선해 상생정치의 초석을 다졌다. 노사정 대타협을 성사시켜 국민적 동의를 얻지 못하는 한 박근혜 정부의 복지정책 성공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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