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 3차 TV 토론이 있던 지난해 12월 16일. 새누리당은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이날 토론 직후 사퇴할 걸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 후보는 토론회를 6시간 앞두고 돌연 사퇴했다.
오후 4시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재로 각 캠프 실무진이 참석한 긴급 토론 규칙 논의가 있었고 3자 토론을 양자 토론 형태로 확 바꿔버렸다. 당시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준비해 온 모든 토론 구상이 다 흐트러져 버린 상황에 격노했다. 격노의 대상은 이런 협상을 수용해버린 참모들이었다. “도대체 누구의 참모냐”는 이야기까지 했다는 말도 들린다.
박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토론회 불참 의사를 밝혔고 참모진은 회담 불참을 상정한 메시지 초안을 작성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토론회를 한 시간도 채 남기지 않은 오후 7시 넘어 회담 참여를 참모에게 통보했다. 운전사는 삼성동 자택부터 토론 장소인 여의도까지 16분 만에 도착할 정도로 속도를 냈다고 한다. 그때만 떠올리면 지금도 간담이 서늘해진다는 참모가 많다.
청와대에 친박(친박근혜)의 흔적이 사라지고 있다. 원래도 적었지만 그마저 줄고 있다. 역대 정권을 보면 매우 이례적이다. 대개 대통령의 최측근 선거 참모가 앉던 정무수석과 정무비서관에 친박을 뺀 채 외교관을 앉히고 검사 출신을 내정했다. 청와대에 남아 있는 비서관 이상 고위 인사 중 친박 인사는 보좌그룹을 빼고 김기춘 비서실장, 이정현 수석, 신동철 백기승 비서관 등 4명뿐이다.
박 대통령을 잘 아는 인사들은 친박 인사들에 대해 원래 의존도가 낮았고 신뢰도 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한 핵심 측근은 “박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원래 친박이 없었다. 내가 힘들 때 곁에 있어준 사람과 나와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12일 수의를 입은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비리 혐의로 징역 2년 실형을 선고받는 장면이 언론에 보도됐다. 박영준은 이명박(MB) 정부 때 ‘왕의 남자’로 불리며 기획조정비서관으로 청와대를 주물렀던 ‘실세’였다. 그는 대통령의 재가(裁可) 없이 ‘행동’부터 옮길 수 있었다.
지금 박 대통령에게 ‘여왕의 남자’는 없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전임 비서실장에 비해 역할이 커진 김기춘 실장이 여왕의 남자 1순위로 거론되지만 측근들은 대통령이 도를 넘는 권한을 주지는 않을 거라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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